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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카풀앱 스톱…정치, 미래 발목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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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식 공유경제 모델로 주목받았던 ‘카카오 카풀’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0일 국회 앞에서 택시기사 최모(57)씨가 카풀 서비스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택시 업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당초 제한적 카풀 서비스 도입에 무게를 뒀던 더불어민주당도 일단 한 발 빼는 분위기다.

한국식 공유경제 서비스 연기 #정치권, 갈등중재·규제혁신 늑장 #핀테크·인공지능·암호화폐 등 #4차산업혁명 고비마다 걸림돌 #원격의료, 빅데이터 규제 완화 #오히려 여당서 번번이 발목 잡아 #“일단 열어놔야 혁신이 되는데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

민주당 카풀·택시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전현희 의원은 13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승차 공유(카풀) 정식 서비스 출범을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발표한 직후다. 엿새 전 ‘카카오 T 카풀’ 베타 서비스를 선보인 카카오는 오는 17일 정식 서비스 시행을 예고했었다.

카카오는 “택시 기사를 포함한 택시 이용자와 각계각층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하기 위해 카풀 정식 서비스 일정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연기는 하지만 무기한 연기는 절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연기 조치로 카풀 서비스는 시행 여부가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많다. 카카오 T 카풀은 출퇴근 목적지가 비슷한 이용자들이 함께 이동할 수 있게 운전자와 탑승자를 연결해 주는 승차 공유 서비스다.

전 의원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연착륙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합의점 도출이 어렵다”며 “논의 과정을 공개 못 하는 건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카카오와 사전에 접촉했느냐”고 묻자 “접촉하지 않았다. 카카오가 전날 국토교통부에 서비스 보류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박홍근 의원은 택시 사납금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택시발전법과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택시기사들의 민원을 반영한 법안이다. 앞서 이해찬 당 대표는 전날 최씨의 빈소를 찾아 “출퇴근 시간에 택시를 잡기 어려우니 (카카오 카풀이) 나왔는데 악용될 우려가 있다. 기사들의 처우를 어떻게 개선할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 하루 만에 ‘이 대표의 빈소 조문→관련 법안 발의→ TF의 기자회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이다. 그리고 카카오는 그사이에 서비스 보류 방침을 결정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청와대·민주당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없다 보니 단기적·정치적 이해관계에만 매몰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에선 공유경제와 핀테크, 인공지능, 암호화폐 등을 아우르는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차량공유 서비스의 원조인 ‘우버’의 기업가치는 720억 달러(80조7700억원)로 평가된다. 주거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310억 달러·34조8000억원)나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450억 달러·50조5000억원) 등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을 넘어 미래의 ‘주류’가 된 것이다.

IT업계 “스타트업 규제 보면 구한말 쇄국정책 같은 느낌”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스타트업이 번번이 규제에 막힌다. 인터넷 포털 다음(Daum) 공동 창업자인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는 “지금 스타트 업계를 둘러싼 규제를 보면 구한말 쇄국정책 같은 느낌이 든다”며 “국내에선 이해관계가 복잡해 문제를 질질 끌다 혁신이 불가능해지고, 뒤늦게 규제가 풀리면 한발 앞서 가던 외세에 밀린다”고 한탄했다.

바른미래당 이재환 부대변인은 ‘정부의 늑장 대응이 불러온 한 택시 기사의 참극’이란 논평에서 “2013년 국내에 카풀 중개 서비스가 등장한 이후 국토교통부는 5년 동안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문재인 정부도 1년 동안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공유경제를 적대시하는 발언도 심심찮게 나온다. 민주평화당 김경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나와 “배달 앱만 보더라도 수수료를 떼어가면서 통닭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말이 좋아 공유경제지 사실은 약탈 경제”라고 주장했다.

관련 업계에선 정치권이 4차 산업혁명의 촉매는커녕 걸림돌만 되고 있다는 불만이 가득차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원격의료 일부 허용이나 공공 빅데이터 규제 완화 등 이른바 ‘혁신 법안’ 처리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당내 논의 과정에서 발목을 잡히고 있다. 그래서 정기국회가 끝난 지금도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규제혁신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홍영표 원내대표)는 발언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장에선 ‘관(官)이 주도한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스타트업 육성 전문 액셀러레이터(투자기관)인 더벤처스 호창성 대표는 “지금은 ‘정리를 안 해준 사업은 일단 하지 말라’는 뉘앙스여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시험하는 데 제약이 많다”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관이 주도하려는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작용이 있더라도 일단 열어놔야 혁신이 되는데, 현재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여권 내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세 축인 혁신성장과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쟁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혁신성장을 통해 생산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미진한 상태에서 소득주도 성장만 속도를 내면서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부 차관과 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노동과 자본이 유연하게 결합해야 혁신성장이 가능한데, 이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나 직업 훈련 등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스타트업과 핀테크 등이 전문 분야인 MAST 법률사무소 이정환 변호사는 “육류만 해도 도축한 뒤 소비자에게까지 붙는 마진을 IT 기술을 통해 줄이겠다던 아이디어가 도축법 등의 규제에 죄다 걸린다”며 “전국적인 정보망이 없을 때 만들어진 법과 규제가 그대로 적용되는데,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호·박민제·김준영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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