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범죄 10명 중 4명꼴 ‘내부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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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결국 범인은 ‘내부자’였다. 2년 전 증시를 발칵 뒤집어 놨던 한미약품 주식 공매도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회사가 정식으로 공시하기도 전 기술 수출 계약이 파기됐다는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돌았다. 일부 전업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사이에 공유됐다. 공시 전에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물량까지 쏟아지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 의혹이 일었다.

미공개 정보 이용, 작전 등 3대범죄 #753명 중 291명이 전·현 임직원 #부채율 높은 회사 범죄 연루 많아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 쉽게 재발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의 조사 결과 사전에 정보를 유출한 범인은 한미약품 법무팀에서 계약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 A씨로 드러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미약품 사건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미공개 정보 이용, 주가 조작, 허위 정보 유포 같은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 범죄를 가장 자주 저지르는 건 ‘내부자들’이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12일 펴낸 ‘자본시장 3대 불공정 거래 혐의 행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드러난 현실이다. 남길남 동향분석실 선임연구위원과 천창민 펀드연금실 연구위원이 공동으로 작성했다.

보고서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 불공정 거래 혐의 자료와 검찰·법원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처리 자료를 분석했다.

이 기간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미공개 정보 이용 ▶시세 조종(주가 조작) ▶부정 거래(시세 변동을 노린 허위 사실 유포, 협박과 폭행 등)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된 사람은 모두 753명이었다.

이 가운데 해당 회사 내부 임직원이 125명(16.6%)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이 일반 투자자(107명, 14.2%)와 회사 관계자(96명, 12.7%), 업종 전문가(79명, 10.5%), 전업 투자자(71명, 9.4%), 회사 전직 임직원(70명, 9.3%)의 순이었다.

여기서 회사 임직원과 관계자, 전직 임직원을 합치면 291명으로 비율은 38.6%에 이른다. 코스닥 시장으로 한정하면 46.2%로 치솟는다. 증시 불공정 거래 범죄 혐의자 10명 중 4명 정도는 내부자들이란 의미다.

증시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회사에도 특징이 있었다. 자산 규모가 크지 않고 재무 상태가 나쁜 회사에 불공정 거래 범죄가 집중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불공정 거래 대상이 된 기업의 총자산은 같은 업종 대비 평균 72.6% 수준에 머물렀다. 부채 비율도 같은 업종의 평균과 비교해 47.4% 높게 나타났다. 수익성도 업계 평균에 비해 나빴다. 특징은 또 있다. 증시 범죄가 한 회사에서 여러 차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2015년에서 지난해까지 불공정 거래 혐의가 드러난 회사는 115개다. 이 가운데 23개사(20%)에선 두 차례 이상 증권 범죄가 발생했다. 이들 회사에서 일어난 불공정 거래를 건수로 따져보면 전체의 39.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불공정 거래가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데는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자본시장법 위반 재판에서 집행유예 비율과 상고 기각률이 높게 나오는 특징이 있다”며 “사건에 대한 처벌 수준이 높지 않다는 비판을 일부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저자인 남 선임연구위원은 “유죄 입증이 쉽지 않고 조사와 처벌에 시일이 오래 걸리는 형사 제재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며 “규제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못하고, 이로 인해 반복적으로 증권 범죄가 발생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권 범죄 사범에 대해 거액의 과징금 같은 금전적 제재를 부과하고 상장사 임원 취임을 제한하거나 증권계좌 개설을 아예 금지하는 것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며 “미국·일본·홍콩 금융당국이 활용하고 있는 행정적·비행정적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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