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천 화재 참사 키운 막힌 유리벽…내년 소방관 진입창 생긴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복합상가건물 2층은 통유리로 돼 있어 소방관 진입과 희생자들의 탈출이 어려웠다. [뉴스1]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복합상가건물 2층은 통유리로 돼 있어 소방관 진입과 희생자들의 탈출이 어려웠다. [뉴스1]

“탈출용 유리창이 있었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대에 근무 중인 정지은(32)씨는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에서 발생한 복합상가건물 화재 사고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20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2층 여성 사우나 외벽은 두께 2㎝ 통유리로 돼 있었다. 희생자들은 화재 직후 비상구가 아닌 이 유리를 깨고 탈출하려 했지만, 맨손으로 2중 통유리를 깨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족들은 소방관들이 2층 유리 벽을 깨고 서둘러 진입했다면 희생자를 줄였을 거라고 주장한다.

관련기사

정씨는 “일본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 유리창에 붙은 빨간색 역삼각형 표시를 쉽게 볼 수 있다”며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대원들이 이 유리창을 통해 건물에 갇힌 사람을 구조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련 법령 개정해 내년 상반기 소방관 진입창 도입 #깨기 쉬운 재질에 빨간 역삼각형 표시 붙여 구조 도움될 듯 #일본은 1970년 건축법 개정 후 3층 이상 33m 이하에 표시 #

 실제 정씨가 보낸 나고야대 단과대 건물 사진에는 2~4층 유리창에 빨간색 역삼각형 모양의 표시가 있었다. 이 유리창은 깨기 쉬운 재질로 만든 ‘소방관 진입용 유리창’이라고 부른다. 안에 갇힌 사람도 도구를 이용하면 쉽게 깰 수 있다. 사진 속 3층 규모의 인테리어 가게와 5층짜리 소규모 한방병원에도 이런 유리창이 설치돼 있었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해 제천 복합상가건물 화재 참사 1년을 맞아 다중이용시설 등에 소방관 진입용 유리창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물 미관을 좋게 하려고 설치한 통유리가 제천 화재 때처럼 환기를 막거나 탈출을 지연하는 장애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나고야대에 있는 4층 건물에 소방관 진입창이 역삼각형 모양(빨간색 동그라미 안)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 정지은씨]

일본 나고야대에 있는 4층 건물에 소방관 진입창이 역삼각형 모양(빨간색 동그라미 안)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 정지은씨]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쯤 건물 11층 밑으로 소방관 진입창 설치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시행된다. 건축법 하위 법령인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을 고쳐 건축 허가 시 소방관 진입창을 설치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이 규칙은 지난달 20일 입법예고를 마치고 국무조정실 검토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내년 5~6월 사이 시행될 예정이다. 적용 대상은 시행일 이후 건축허가를 받거나 증·개축하는 건물 등이다. 김부병 국토부 건축정책과 사무관은 “건축물 용도에 상관 없이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건물면 2~11층에 소방관 진입창을 설치하도록 조항을 추가할 계획”이라며 “소방이 보유하고 있는 고가사다리차가 안전하게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높이가 11층인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나고야시의 한 인테리어 건물 3층에 소방관 진입창 표시(빨간 동그라미 안)가 붙어있다. [사진 정지은씨]

일본 나고야시의 한 인테리어 건물 3층에 소방관 진입창 표시(빨간 동그라미 안)가 붙어있다. [사진 정지은씨]

소방관 진입창에는 직경 20㎝ 이상의 빨간색 역삼각형 표지가 붙는다. 대형 건물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같은 층에 있는 소방관 진입창 간격은 40m 이내에 설치하도록 했다. 진입창 크기는 폭 90㎝, 높이 1.2m 이상으로 규정했다. 김 사무관은 “진입창 유리 재질이나 두께는 소방청과 협의 중”이라며 “입법예고 기간에진입창을 90도로 열 수 있게 만들면 효과적일 거라는 의견도 나왔다”고 했다.

국토부가 마련한 소방관 진입창 설치 기준은 일본과 매우 비슷하다. 라정일 전 일본 돗토리국립대 사회기반공학 조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호텔, 여관 등 대형 건물 화재가 잇따르자 1970년 건축기준법을 개정해 건물 3층 이상, 33m 이하에 소방관 진입창을 설치하도록 했다. 창문을 여닫을 수 없는 통유리 건물에도 이런 유리창을 별도로 설치하고, 누구나 식별하기 쉽게 빨간색 역삼각형으로 표시한다.

일본 나고야시에 있는 5층 건물에 소방관 진입창이 역삼각형 모양(빨간색 동그라미 안)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 정지은씨]

일본 나고야시에 있는 5층 건물에 소방관 진입창이 역삼각형 모양(빨간색 동그라미 안)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 정지은씨]

라 전 교수는 “건물 외벽을 강화유리로 만들 경우 소방관 진입창 두께는 5~6㎜ 이내로 규정했다. 이는 소방관이 손도끼로 신속하게 깰 수 있는 두께”라며 “33m 이상 고층 건물에는 비상 대피용 엘리베이터를 갖추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피 방송을 할 경우에도 ‘비상구로 신속히 이동하되, 비상구를 찾기 어려운 사람들은 소방관 진입창으로 대피하라’고 인지시켜준다”고 덧붙였다.

소방관 진입창 설치에 대해 일선 소방관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김대용 충북소방본부 구조장비 담당은 “구조가 복잡한 건물에 불이 나면 화염으로 비상구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며 “외벽에 식별 가능한진입창이 있으면 구조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