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한 정책에 자신감을|정책기조 흔들려서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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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익환목사 일행의 방북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자세를 보면서 좀더 의연하고 무게 있는 대응을 할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문목사 일행이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민감한 단계에 있는 시점에서 그런 식으로 김일성을 찾아간 것은 지극히 분별 없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정부가 그의 일행이 돌아오는 대로 실정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의사는 이해가 간다. 또 이와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도 때늦은 감은 있지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고, 7·7선언과 노태우대통령의 유엔연설에 담긴 대북정책의 기조를 후퇴시키는 듯한 정부의 움직임은 사안의 비중으로 볼 때 지나친 반응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부의 정책이란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이 있어야 권위와 실효성이 뒤따른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남북관계와 같은 전 민족의 관심과 이해가 걸린 대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정부는 문목사 일행의 방북이란 하나의 사건을 놓고 금강산공동개발계획을 보류하고 남북작가회의에 참석하려던 5명의 문인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가 취소하고 심지어 보안법 내용을 완화하려던 방침까지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무엇보다도 6공정부가 「큰형」의 입장에서 북한을 국제사회로 불러들이고 『한민족으로서 번영을 위해 서로 협조하는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진전시켜나가겠다』는 대북한 정책 골격을 뒤바구려는 뜻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문목사 일행의 방북을 그처럼 엄청난 위기로 보는 것은 균형감각을 잃은 과잉반응이 아닌가.
지금까지 현정부가 임해온 대북한 정책의 기조는 올바른 것이고 이 정책은 아직 첫걸음을 내디딘 탐색의 단계에 있다. 이 정책은 남한이 갖고 있는 정치체제와 국력, 그리고 한반도 주변에서 일고 있는 탈이념·화해 분위기로 봐서 한국의 입지가 북한의 그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전제를 깔고 추진되어온 것이다. 인적·물적 교류와 금강산개발과 같은 회유책을 통해 극도로 폐쇄된 북한의 교조주의와 전체주의 체제의 완화를 유도하고, 그 바탕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긴장완화 조치를 우선 디딤돌로 쌓아 궁극적으로는 통일에의 길로 접근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역으로 한국의 유화책을 자신들이 추구해 온 혁명노선을 위해 우리 사회를 분열할 기회로 삼고 있다. 그런 북측의 의도는 이미 예견된 것이고 우리 정부의 정책도 그런 북의 의도가 허황된 망상임을 일깨워 주는데도 목적을 둔 것이다.
금강산 개발계획이 당초에 너무 성급했고, 그 진행과정에 비판받을 점이 많았으나 그 기조는 남북간의 관계개선을 통해 북한이 서방자본과 기술을 얻도록 해주자는 것이었고, 이 같은 우리의 성실한 노력은 계속 북측에 인식시켜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책기조에 정부와 국민이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줘야 된다. 문목사의 방북을 보고 대북정책 자체를 후퇴시킨다면 결국 북의 첫 탐색에 우리측 정책이 자신감 없이 우왕좌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정부 당국은 이 점을 성찰해서 북한이 행동으로 정부 정책에 호응해 오지 않는 한 회유책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는 않아야겠지만 회유책자체를 후퇴시키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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