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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시대…낙엽을, 아니 명함을 태우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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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7)

‘초(超)연결사회의 공포’, 얼마 전 아현동 KT 통신구 화재로 혼란이 있던 직후 언론이 전한 경각심이었다. 나는 그날 집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면서 네트워크 발달로 인간이 데이터와 ‘짬뽕’ 되는 세상은 어떨까? 잠깐 생각해보았다. 물론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이해하는 ‘초연결사회’는 스마트폰부터 시작한다. 한 달 넘게 해외에 나가 있어 봐도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었다. 우대환율 환전 신청, 대중교통 결제, 숙소 예약, 택시 호출, 내비게이션, 통역, 지도, 카메라, 한국 소식이나 유튜브 시청, 은행 업무나 공과금 납부, 카카오톡, 공짜전화, 글쓰기, 이메일…. 모든 게 150g짜리 스마트폰 하나로 가능했다. 이 정도면 초연결을 넘어 아예 세상과 내가 한 몸으로 꽁꽁 묶인 기분이다.

반대로 SNS를 통한 노출도 실감한다. 매일 신문에 등장하는 ‘디지털 포렌식’이니 ‘빅데이터’니 하는 것을 떠나서라도, 당장 나의 아내는 내가 어디서 뭘 사 먹고 다니는지 다 안다. 고령의 어머니가 전화를 안 받으셔도 가족 단톡방에 물어보면 금방 행방이 나온다.

올레길의 ‘말조심’ 표지가 재미있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제주에 있는 옛 직장 동료가 곧바로 연락을 해와서 첫 직장 입사 동기 셋이 제주 시내 횟집에서 대방어에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사진 박헌정]

올레길의 ‘말조심’ 표지가 재미있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제주에 있는 옛 직장 동료가 곧바로 연락을 해와서 첫 직장 입사 동기 셋이 제주 시내 횟집에서 대방어에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사진 박헌정]

얼마 전에는 제주 올레길 2코스를 걷다가 ‘말조심(Be careful with horses))’이라는 안내판이 재미있어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더니 곧바로 제주도 지인이 전화해서 어디냐고, 소주 한잔하자고 했다. 정말 우리는 초연결의 한 가운데 놓여있다.

그런데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어도 사람들 관계까지 초연결 상태는 아닌 것 같다. 퇴직 후 종이상자에 가득 든 2000매의 명함, 그리고 엑셀 파일로 관리하던 4000여개의 지인 명단을 정리했다. 명함을 버릴 때 마치 이별이라도 하듯 다소 울적한 기분이 들면서 그동안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를 떠올리며 상징적으로 명함 대여섯장을 베란다에 가지고 나가 빈 화분에 넣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강아지와 함께 바라보았다. 나도 이효석처럼 겨울로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2천장의 명함을 버리고 나니 다시 모이기 시작한 명함들.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이들과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유지될까. [사진 박헌정]

2천장의 명함을 버리고 나니 다시 모이기 시작한 명함들.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이들과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유지될까. [사진 박헌정]

초연결 시대? 나는 그동안 무엇과 연결되었을까.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 나 역시 상대가 앉은 자리에서 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IT 기술로 묶인 세상의 연결망 어딘가에 갇힌 미세한 티끌 같은 존재….

뇌과학자들은 소와 쥐의 지능을 예로 들면서 중요한 것은 뇌의 용량이 아니라 뇌가 회로처럼 얼마나 잘 연결되었는지라고 했다. 상자 가득한 명함이 뇌의 용량이라면 초저녁에 전화로 불러낼 수 있는 관계가 회로일 것 같았다. 50개? 많아 봐야 100개 안쪽의 번호만 남는다. ‘초연결 속의 단절’, 우리 시대에 직면한 공포 아닐까?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부분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대륙이나 모래톱이 그만큼 작아지듯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집이 씻겨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첫 장에 놓인 존 던(John Donne)의 기도문은 나의 존재가치를 따뜻하게 북돋워 주곤 했다. 그러나 몸으로 느끼는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씻겨 내려감으로써 타인에게도 영향이 있을 거란 믿기엔 세상이 너무 치밀하고 정확했으며, 밤늦게까지 술 마시며 만들던 ‘인간관계’는 알고 보니 존 던의 위로와 달리 ‘기브앤테이크’와 ‘낙장불입’이 기본원리였다.

회사에서 온갖 스트레스 받던 30~40대 때에는 핸드폰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사방에서 나를 찾는 연락들, 뒤따르는 독촉과 책임과 질책. 내가 가장 꿈꾸던 것은 스마트폰 없는 삶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는 핸드폰 없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쉬우면 네가 찾아와라. 나는 연락받지 못해 아쉬울 게 전혀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초연결사회의 중심에 선’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IT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시민강좌를 통해 뵌 한국외대의 어느 교수님은 핸드폰이 아예 없다. 그래도 만나기 어렵지 않다. 늘 연구실에 있고 약속을 한번 정하면 틀림없으니 말이다. 집에서 책 좀 읽으려 해도 스마트폰 때문에 방해받는데 학자에게는 오죽할까.

미아동에서 작은 부품가게를 운영하셨던 장인어른은 가족과 동네의 연결 중심이셨다. 1980년대 초반 ‘태양사’ 앞에서 장인어른과 나의 아내. [사진 박헌정]

미아동에서 작은 부품가게를 운영하셨던 장인어른은 가족과 동네의 연결 중심이셨다. 1980년대 초반 ‘태양사’ 앞에서 장인어른과 나의 아내. [사진 박헌정]

나의 장인어른은 미아동에서 태양사라는 자동차 부품가게를 40년 넘게 운영하며 집안을 일으키셨는데, 삼 남매가 아침저녁으로 학교나 직장에 오갈 때마다 들러 인사하고, 동네 사람들도 늘 가게를 중심으로 북적거렸다. 닫은 지 십년이 지났어도 가족 단톡방 이름은 아직도 ‘태양사’다. 마음속 중심인 것이다.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학교 앞 단골 술집에 모여있으면 군대에서 휴가 나온 녀석들이 알아서 찾아오고, 직장 다니는 선배가 찾아와 술값을 내주기도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연결방법은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지키고 있다. 그게 마케팅 용어로 ‘브랜드 가치’ 아닌가.

세상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며 발버둥 치던 것도 젊을 때의 혈기였다. 목을 차지하고 앉아내 역할 하면서 묵묵히 기다리는 것, 이제는 그게 세상과 단절되지 않는 가장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 아닐까. 낙엽 대신 명함을 태우면서 생각해보았다.

박헌정 수필가 portugal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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