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날로그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나의 고물 자전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4)

어느 낯선 곳에 가더라도 한쪽에 다소곳이 세워진 자전거를 보면 여유가 느껴진다.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이 연상되기 때문 아닐까. [사진 박헌정]

어느 낯선 곳에 가더라도 한쪽에 다소곳이 세워진 자전거를 보면 여유가 느껴진다.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이 연상되기 때문 아닐까. [사진 박헌정]

내게 자전거는 아날로그의 상징이다. 아버지께 군청 공무원 시절에 자동차도 없이 관내 이곳저곳을 어떻게 다니셨는지 물었더니 "그때는 자전거가 있었지." 하셨다. 아, 그렇지. 흙길, 자갈길, 야트막한 개울, 칼라 넓은 하얀 반소매 셔츠에 양복바지 입은 군청 서기가 자전거로 신작로를 달리며 논에서 일하는 주민들과 인사하는 모습.

어릴 때 MBC <장학퀴즈>가 시작되기 전에 "동그라미 두 개가 달려요, 선경 스마트 자전거" 하는 CM과 함께, 역시 선경합섬에서 만든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생들이 흙길에서 자전거 타는 광고가 나왔었다. 맞다. 그때는 자전거 탄 그 모습이 스마트였다. 스마트의 출발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였다.

자전거 이야기를 하려니 늘씬한 모습으로 하루에 백 킬로미터 이상 라이딩 하는 동호인들이 가소롭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엄연한 자전거 동호인이다. 내 자전거는 비싸거나 전문적인 제품이 아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자전거를 타면 건강한 생활이 시작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퇴근길에 동네에서 20만원 주고 덜컥 산, 아무 개성도 특징도 없는 제품이다. 주인 입장에서 마진이 가장 많이 남는 재고를 권했던 게 아닐까 싶다.

목동은 자전거 환경이 비교적 잘 되어있어 아파트 단지 옆 중학교에는 등하교시간마다 자전거로 붐빈다. 어떤 녀석들은 두 손 놓고 타면서 스마트폰 문자까지 보낸다. [사진 박헌정]

목동은 자전거 환경이 비교적 잘 되어있어 아파트 단지 옆 중학교에는 등하교시간마다 자전거로 붐빈다. 어떤 녀석들은 두 손 놓고 타면서 스마트폰 문자까지 보낸다. [사진 박헌정]

번쩍이던 새 자전거는 두어 번 탄 후 수년간 실외의 자전거 보관대에 묶여 풍상의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운명이 다시 시작된 건 나의 직장생활 운명이 다하면서부터다. 집에 들어앉은 후 강아지와 더불어 자전거가 내 피부에 가장 밀접하게 와 닿기 시작했다.

회사 다닐 때 같으면 동네의 자잘한 일들은 아내 몫으로 넘길 수 있었다. 굳이 내가 할 때면 생색을 많이 낸 후 차를 몰고 가거나 두어 정거장이라도 꼭 버스를 탔다. 그런데 집에 있으면서부터는 시간도 많고 운동도 필요하니 걸어 다녀보기로 생각했다.

막상 걸어보니 어중간하게 먼 곳이 많아 지루하고, 땀 나고, 하여튼 기대만큼 즐겁지 않았다. 터덜터덜 걸어들어오다가 눈에 띈 게 바로 자전거 보관대였다. 열에 일곱은 주인에게 버림받고 기울어진, 타이어 눌려있고 녹슨 폐고철들, 그사이에 내 것으로 기억되는 놈도 있었다.

종로에도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그렇지만 도로 가득한 자동차와 수시로 넘나드는 오토바이들 때문에 웬만한 용기 없이는 자전거를 타기 힘들다. 약간 전시행정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 박헌정]

종로에도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그렇지만 도로 가득한 자동차와 수시로 넘나드는 오토바이들 때문에 웬만한 용기 없이는 자전거를 타기 힘들다. 약간 전시행정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 박헌정]

처음에는 타기 부담스러웠다. 열두살 때 동네 자전거포에서 삼십 분에 50원씩 주고 빌려, 그것도 사촌 동생과 교대로 나누어 타고 연습한 실력이라 겨우 중심만 잡고 가는, 말하자면 자전거 장롱 면허였다.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진 목동에서조차 반대편에 자전거가 나타나면 지레 손에 힘이 들어가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자 나도 모르게 안정감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자전거 타는 그 자체를 좋아한다. 걷거나 뛰는 것과 다른 속도, 그리고 균형 잡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나도 물론 그런 것이 재미있지만 그보다 자전거와 더불어 하게 된 일 하나하나가 경험과 즐거움의 폭을 크게 확장해 주었다.

자전거가 가져다준 실질적인 혜택은 일상생활의 범위와 기동력이다. 자전거가 없었다면 도보 20분 거리의 수영장 강습을 이런저런 핑계로 빼먹다가 결국 수영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가 "뭐가 다 떨어지고 없네?" 할 때마다 번쩍 일어나서 쌩~하고 다녀오지 못했다면 안 그래도 집안에서 역할이 애매하던 나로서는 아내 눈치를 더 살피게 되었을 것이다. "자전거 타고 선유도 안 갈래?" 하는 제안이 부부의 권태기를 조금이라도 지연시켜주었을지 모른다.

예전에는 짐 자전거에 몇 미터 높이로 짐을 쌓아 올리고 곡예 하듯 시장을 빠져나가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 화물 오토바이로 바뀐 것 같다. [사진 박헌정]

예전에는 짐 자전거에 몇 미터 높이로 짐을 쌓아 올리고 곡예 하듯 시장을 빠져나가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 화물 오토바이로 바뀐 것 같다. [사진 박헌정]

이처럼 자전거 덕분에 몸에 밴 '귀차니즘'이 없어졌다. 보건소에 가서 3천원 주고 B형간염 접종도 하고(가까운 병원조차 가기 귀찮아 3년 미루던 것이었다), 시장에서 배추 사다가 김치도 한다. 아내가 안주 될만한 요리를 하면 차리는 동안 재빨리 막걸리를 사 온다. 은행, 미용실, 구청, 수영장, 제과점…. 어디 가야 할 데 없나 찾을 정도가 되었다. 내 평생 “벌써 갔다 왔냐? 참 동당 거리며 잘도 나다닌다.” 같은 말을 들을 날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자전거를 가까이하면서부터 천천히 구르는 자전거 바퀴만큼 시간이 여유롭게 흐르는 느낌이다. 일상복 차림으로 설렁설렁 타는 주부들, 검은 비닐봉지 매달고 가는 중년들, 손에 든 물건도 없으면서 손 놓고 타는 학생들을 보면서 피 튀기는 삶의 전장에서 평화로운 일상으로 생환했음을 느낀다. 아, 자전거 손 놓고 타기는 훌라후프와 더불어 내가 오십줄에 도전해서 일궈낸 피지컬 부문의 값진 성과다.

정작 새것이었을 때는 방치하다가 퇴직 후부터 애마가 된 십년지기 고물 자전거. 낡아갈수록 정이 든다. [사진 박헌정]

정작 새것이었을 때는 방치하다가 퇴직 후부터 애마가 된 십년지기 고물 자전거. 낡아갈수록 정이 든다. [사진 박헌정]

물건에도 정이 든다. 다 낡은 내 고물 자전거가 없어진 일이 있었다. 무척 서운했는데 며칠 있다가 제 자리로 돌아왔다. 누가 자기 건 줄 알고 가져갔다가 다시 가져다 놓았는가보다. 얼마나 반갑던지. 고물이라 편하다. 자물쇠 안 채워도 아무도 안 가져가니까. 내 생활도 이제 자물쇠 채울 필요 없는 시절로 들어가고 있다. 이제야 나는 자전거를 잃을 생각도, 자전거는 내가 떠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궁합이 되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얼마 전에 자전거 브레이크를 손보러 갔다. 서두르는 법 없는 사장님이 커피를 뽑아 건네주며 "일없어도 자주 놀러 와서 얘기하고 놀아유."한다. 나한테 놀러 오라고 말해준 사람이 얼마 만인가. 이게 자전거의 속도다.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으니 내년 봄에는 이것 하나 가지고 햇살 좋은 날 배낭 멘 채 지방으로 먼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박헌정 수필가 portugal4@naver.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