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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난 떠돌이 고양이 "갇힌 삶은 가짜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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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양이 소녀
부희령 지음, 생각과느낌, 224쪽, 8800원

흔하디 흔한 책 홍보 문구같은 얘기부터 해야겠다. '고양이 소녀'를 펴는 순간, 첫 문장부터 빨려들기 시작했다고. "오랫동안 나는 망설였다. 거리를 떠돌며 엄마를 계속 찾아다닐 것인가, 아니면 편안한 잠자리와 먹이를 위해 사람을 길들일 것인가를. 하지만 그 애를 발견한 순간 내 고민은 눈 녹듯 사라졌다…."

눈치챘겠지만, 일본 작가 나스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 소설의 화자는 '야옹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도둑고양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갇혀지낼 수밖에 없다면 그건 진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떠돌이 고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녀 민영을 만나면서 야옹이는 "심장이 쿵쿵 뛰면서 무엇인가 나를 확 잡아끄는 느낌"이 든다. 민영은 바로 '고양이 사람'이었던 것이다.

고양이 사람? 야옹이의 엄마가 들려줬던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쓸데없이 한데 뭉쳐서 살잖니? 서로 할퀴고 물어뜯으면서도 떨어질 줄 모르지. 하지만 고양이 사람들은 달라. 우리처럼 필요한 거리를 지키며 혼자 살아가는 당당함을 즐기지. 고양이 사람들은 같이 살기에 가장 좋은 동물이라고 하더라."

'고양이 소녀'는 곁 주기를 싫어하는 깔끔한 동물 고양이의 입을 빌어 정을 갈구하지만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소녀의 내면을 묘사한다. 민영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재혼해 따로 산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민영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둑고양이를 주워다 인터넷 고양이 동호회 회원들에게 판다. 민영은 야옹이를 학교를 잠시 쉬고 있는 부잣집 소년 한이에게 넘긴다. 부모의 정을 느낄 새가 없었던 민영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데 익숙지 못하다. 그래서 자신 곁에 머물고 싶어하는 야옹이도 팔고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한이에게도 선뜻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고양이 소녀'의 흡인력은 고양이의 얘기가 사람의 얘기로 바로 치환돼 읽히는 데 있다. 그 형식이 퍽 새롭고 매력적이다. 엄마 품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야옹이 처지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민영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먹다 남은 과자 한 조각을 던져 준 것으로 나를 제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무례한가?"라며 사람을 경계하던 야옹이.

그러나 민영과 한이와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가만히 보면, 서로 물고 뜯고 할퀴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데 어울려 사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민영 역시 점차 자신의 성을 허물고 한이와 고양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 과정과 결론이 전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점 덕택에 '고양이 소녀'의 책장을 덮는 뒷맛이 산뜻하다. 오랜 만에 만나는, 괜찮은 성장소설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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