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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이기심인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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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종교인이나 윤리학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심'이다. 남을 위하는 이타심(利他心)이나 남을 배려하는 선의(善意)보다 이기심이 더 활발하게 작동해야 경제가 잘 굴러간다. 너무 많이 인용된 구절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양조장.빵집 주인의 호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그들의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의도하지 않았던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게 된다'.

빵집 주인이 빵을 맛있게 만드는 것도 많이 팔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의미다. 공산주의는 이런 이기심을 무시하고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다가 망했다. 북한이 성과급제를 도입한 것도 뒤늦게나마 경제의 원동력이 이기심이라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요건은 재산권의 확립이다. 윌리엄 번스타인은 국가의 번영에 필요한 첫 번째 요소로 재산권의 보장을 꼽는다. 인류의 실질소득은 1500년까지 거의 늘지 않았다. 이후 1820년까지 완만하게 증가했으며, 1820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갑자기 역동적으로 늘었다. 번스타인은 이런 현상이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고 분석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이 무렵 ▶재산권의 보장▶과학적 합리주의▶자본시장 형성▶수송.통신의 발달 등 번영의 네 가지 요소가 갖춰지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재산권의 보장이라고 번스타인은 강조한다.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발명이나 혁신은 물론 경제활동 자체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개인의 권리, 특히 재산권이 국가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 '자유'라고 말할 정도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관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경제 문제를 경제적인 측면보다 윤리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기심과 재산권을 무시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효율보다는 공평을 더 중시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부자(富者)에 대한 시각이 이상하다. 20%의 부자를 80% 서민의 질투의 대상으로 만드는 분위기다. 너나없이 이기심을 최대한 발휘해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자에 대한 질투심을 조장하고 있다. 부자라는 사실이 자랑이 아니라 위험한 일이 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요즘 기업의 화두가 되어 버린 '상생 경영'도 공평을 앞세우는 사례다. 상생경영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는 대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래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려는 동기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기업들은 정부의 압력이나 시류에 떠밀려 마지못해 상생경영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런 방식은 나중에 서로 얼굴 붉히는 결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종합부동산세와 재건축 규제 등 정부의 부동산 관련 세금과 제도는 재산권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규제책의 방향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부동산 규제책의 목표나 추진 강도는 너무 과격해 재산권 침해를 걱정하게 만든다.

노무현 정부가 이런 일을 추진하는 의도는 순수할 것이다. 명분도 매우 뚜렷하다. 문제는 이런 정책의 결과가 의도나 명분과 전혀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의도가 순수하고 명분이 훌륭하다고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에크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한다고 꼬집었다. 기분 나쁘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이기심과 재산권을 존중해야 경제가 돌아간다. 부자에 대한 질투심이 앞서는 상황에서는 국가의 번영을 기약할 수 없다.

이세정 경제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