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어려운데 금리까지 올라…자영업 줄도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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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텅 빈 상가 안내판. [연합뉴스]

세종시의 텅 빈 상가 안내판. [연합뉴스]

"아직 1억9000만원 남아 있는데…"
서울 서초동에서 치킨 프랜차이즈를 하는 정모씨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발표에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는 6년 전 삼성생명보험으로부터 4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지금은 3.5%로 비교적 저리지만, 변동금리로 설정돼 있어 대출이자가 오를 것 같다"며 "중간에 어느 정도 갚았지만, 장사해서 남긴 게 아니라 집을 팔아 갚았다. 아직도 그 정도의 빚이 남아 있는데 이번에 금리까지 오르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가게 매출은 내리막을 걷고 있어 더 걱정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저녁 회식을 하는 직장인이 줄어든 데다 경쟁 브랜드는 물론 배달 전문점까지 생겨 예전보다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1월부터 최저임금이 10.9% 올라 인건비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배달 정직원 한 명에 주방은 저녁과 주말에 파트타임으로만 3명 쓰고 있다. 37평 레스토랑형 매장에서 최대로 줄인 인원"이라며 "내년에 인건비가 또 오르면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30일 기준금리를 1.5%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영업자의 시름이 깊어졌다. 기준금리에 맞춰 이자 부담이 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외식업이나 편의점 등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이중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 상환 부담은 물론 이에 따른 소비 침체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매출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편의점주 유모씨는 "편의점 하는 사람 중에 빚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가계 대출 금리는 물론 편의점을 내면서 본사에서 절반을 보조해준 상생 대출 금리까지 모두 인상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매출이 뚝 떨어지는 겨울(12월~2월)을 앞두고 금리 인상이 발표된 점도 시름이 크다. 유씨는 "겨울은 편의점의 보릿고개다. 특히 대학 등록금을 내는 1월 말에서 2월 초가 되면 편의점 매출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며 "여기에 최저임금까지 올라 이때가 되면 문 닫는 편의점이 속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3사(CU·GS25·세븐일레븐)는 최근 3년 동안 매년 약 4000개씩 점포가 순증했지만, 올해(10월말 기준) 들어 1000개 안팎에 그치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솥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는 자영업자들 [연합뉴스]

지난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솥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는 자영업자들 [연합뉴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590조7000억원(6월 말 기준)이다. 570만(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영업자 1인당 1억원 이상의 빚을 안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말 549조2000억원과 비교했을 때 6개월 만에 41조5000억원이 증가했다. 현재 기준으로는 600조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 계산으로 대출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가 부담해야 할 연간 이자는 1조5000억원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기존에 대출에 추가 대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상황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은행에서 빚낸 자영업자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제2·3금융권에서 빚낸 자영업자 규모는 아직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사회안전망 구축 등 사전 대책 없이 진행된 금리 인상으로 가뜩이나 취약한 계층인 소상공인·자영업자가 가장 큰 타격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최근 부동산·최저임금·일자리 정책에 대한 잇따른 실책을 금리 인상으로 덮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자영업자는 동시에 최대 소비자이기도 하다.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연쇄 도산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10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비은행금융기관인 상호저축은행(10.84%), 상호금융(4.10%)의 대출금리는 전월보다 각각 0.25%포인트, 0.03%포인트 올랐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늘어난 자영업 대출은 장사가 잘돼 확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버티기 위해 빚을 낸 경우가 많다"며 "추가로 신용대출을 한다 하더라도 악성 대출이 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사가 잘되면 문제가 없지만, 경기가 계속 어려워지고 있어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 상환 부담은 커질 것"이라며 "정부는 자영업자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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