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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3대 과제 이렇게 풀자] 下. 위도 원전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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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좌담회 참석자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강철형 원자력 연구소 박사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윤순진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사회= 곽재원 박사 경제담당 부국장

중앙일보가 제시한 3대 국정과제를 다루는 연속 좌담회의 세번째로 위도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원전센터)을 둘러싼 대책을 관련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들은 원전센터 선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느냐, 아니면 지금까지의 과정을 인정하고 냉각기간을 가지면서 충분한 토론과 설득을 통해 여론을 모아가야 하느냐에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선정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점이 있었던 만큼 자료 공개를 확실히 하고, 지역 주민의 의사도 반영될 수 있는 합리적인 절차를 새로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곽재원=원전센터 설치를 놓고 70여일째 나라가 시끄럽다. 부안의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고 한다. 계획의 백지화를 포함해 원점에서 검토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이재기=우리나라 국민은 본질적으로 핵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옆 나라에서 원자폭탄이 떨어져 그 피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추진 중인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은 환경영향평가나 실제 운영에서 피해 보고가 거의 없다. 다만 관련 전문가들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일반 대중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데는 책임이 있다.

윤순진=안전하다고 말하지만 핵에 대한 의견은 찬반이 명확히 갈려 있다. 설사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해도 대중이 이를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것도 문제다. 허심탄회하게 토론해 과학적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고 대중도 이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정부가 국민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고 대중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기 위한 절차적인 문제를 지켜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노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밀실행정으로 이뤄져온 것이 문제다.

곽재원=원전센터는 안전핀이 꽂혀 있는 수류탄을 머리에 두고 자는 것과 같다고 본다. 통계적으로 대단히 안전하기는 하지만 찜찜한 것이다. 안전하지 않다기보다 안심(安心)이 안된다는 것 아닌가.

이재기=1970, 80년대에는 정보 공개가 제한돼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등을 통해 핵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안전에 관한 정보를 은폐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서주원=국민이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특히 반(反)원전 측에 있는 사람들은 깊은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사업자 측에 정보 공개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미국을 예로 들면 그들은 똑같은 사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모든 자료를 국민에게 다 공개하며 직접 관련이 없는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크로스체킹을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7년 동안 이런 사업을 일방적으로 추진해 왔고 지금도 같은 방식이 이어져오고 있다. 정보 공개를 제대로 해서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일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믿는다. 정부는 핵폐기물을 방사성 폐기물로, 또 원자력 수거물로 이름을 바꿔 왔다. 실체를 정확히 납득시킨 것이 아니라 말을 바꾸는 식으로 문제를 호도했다.

강철형=원자력은 가장 투명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기구에도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크로스체킹 문제도 원자력계와 비원자력계 간에 대화하면서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노력해 왔다.

서주원=이것은 단순한 원전센터 문제가 아니다. 원전과 핵물질에 대한 공포심과 부정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핵폭탄이든, 핵연료이든, 그 폐기물이든 지난 세월을 통해 핵이라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윤순진=원전 수거물을 핵과 분리해 생각해서는 안된다. 논란이 원자력이라는 근본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재기=통계로 볼 때는 원자력으로 인한 사고는 부풀려져 인식된 측면이 있다. 그동안 원자력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일본의 원폭 피해 외에 전세계적으로 사망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지난 60년간 2천, 3천명 정도다. 미국에서 물통에 빠져 숨지는 아이들이 1년에 2백명이나 된다.

윤순진=수치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비행기나 자동차는 자신의 의지로 이용하는 것이다. 원자력의 경우는 싫다고 하는데 자꾸 하라고 하는 것이다.

서주원=지나간 통계만 봐서는 안된다. 원전 수거물이 가지고 있는 지속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1만년 이상 영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물질을 단순히 통계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후손들을 생각해서도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재기=원전센터가 정말 위험하기 때문에 현지 주민이 반대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내면적인 주 요인은 이것을 유치할 경우 재산권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부가 주민들에게 재산상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보상 체계를 갖춰주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서주원=그렇다면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겠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절차의 문제다. 부안 군민들이 반대하고 의회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군수가 유치 신청을 해버렸다. 여기에 절차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둘째는 현금 보상을 못하게 돼 있는데도 위도 주민에게 현금 보상을 해준다며 원전센터 문제를 대충 덮어버린 것이다. 처음에 주민이 95% 찬성한 것은 현금 보상을 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를 더 어렵게 했다.

이재기=원전센터를 반대하는 쪽에선 얘기하기조차 거부했다. 합의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강철형=추진 과정에서 공청회를 하려고 하면 띠를 두르고 들어와서 엎어버리는 등 판을 깼다. 그러고는 나중에 절차를 안 따랐다고 주장한다.

서주원=현재 같은 절차로 일을 추진할 때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원전센터는 추진할 수 없다. 완전한 합의는 있을 수 없다 하더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원점으로 돌아가 정말 객관적인 부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 강행은 부담이 너무 크다.

강철형=보완은 좋지만 백지화하자는 것은 좋은 의견이 아니다. '안면도.굴업도 처리장을 거부했는데 왜 우리냐'는 식의 논리가 이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친다 해도 반대는 충분히 나온다. 이 정도 추진된 상황이라면, 잘못은 인정하되 대화와 타협으로 계속 끌고 가야 한다.

곽재원=정부가 성명서를 내 비공개 이유와 미흡한 점을 시인하고 이후의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면 설득이 가능하지 않을까.

서주원=위도 문제는 이미 강을 넘었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안된다. 정부는 2008년이 되면 원전 수거물 저장에 한계가 온다고 하지만 더 여유가 있다고 본다. 원점에서 새로운 절차를 밟아도 늦지 않다.

강철형=지역 주민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를 대고 공개 토론을 하자는 의견은 좋다.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디를 가나 똑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위도를 백지화하고 다른 곳을 찾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기존 원전 부지 내에 짓는 것도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윤순진=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민이 투표해 찬반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지 않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이재기=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냉각기가 필요하다. 좀 시간을 두고 정부가 됐든, 사업주체가 됐든 자료를 설명하고 대화를 통해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

서주원=지금까지의 것은 인정하고 절차적 합리성을 갖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안된다. 다시 원점으로 가야 한다.

윤순진=전면 백지화한다면 에너지 장기수급 계획을 재검토한 다음에 원전센터 규모 등을 달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래야 반대하는 주민과 환경단체 등을 설득하는 데도 유리하다.

곽재원=위도 문제의 원인은 단순히 이것이다, 저것이다로 구분할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정치.경제.지역정서 등이 한데 어우러진 오늘의 우리나라 자화상이 아닌가.

윤순진=위도 문제의 본질은 안전성 때문인가, 보상의 문제인가. 이 문제의 기저에 작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 정말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부안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지, 그 본질이 뭔지 찾아야 한다. 이것이 안면도처럼 생태학적 관심 같은 문제가 부안에도 작용했는지를 한번 볼 필요가 있다. 또 국민이 과연 이를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는지 의심스럽다. 도시 사람들은 원전센터가 도시에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 혜택은 주로 누리고 있다. 국민 전체가 핵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연구하는 방법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

서주원=부안에서 안되면 또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국민 모두가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젠 국민적 의제로 올릴 때가 됐다.

정리=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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