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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85곳 “폐원하겠다” … 내년 봄 ‘유치원 난민’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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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표류하는 유치원] 피해 

“엄마, 우리 유치원 없어지면 선생님은 어떻게 돼? 친구들은?”

교육부 “인근 국공립에 수용 계획” #“국공립 2시면 끝나 맞벌이 곤란” #학부모 “현실 무시 탁상행정” 불만 #“폐원 때 받을 애들 상처 벌써 걱정”

서울 도봉구에 사는 박모(38)씨는 얼마 전 여섯 살 아들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유치원이 폐원키로 한 사실을 아이들까지 알고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유치원은 사립유치원 비리가 불거진 이후 벌써 세 차례 학부모에게 폐원을 통보했다. 유치원이 밝힌 폐원 이유는 원장의 건강 악화다. 도봉구에서만 이곳을 포함해 총 3곳이 같은 이유로 폐원을 예고했다.

이곳 학부모들은 새로운 유치원을 찾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박씨는 “아들이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해 재원생만이라도 졸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지만 답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유치원 문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 20장이 붙어 있다. ‘친구들아 사랑해, 선생님 사랑해요’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박씨는 “정부와 유치원이 합의되지 않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아이에게 돌아온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사립유치원들이 폐원 의사를 잇따라 밝히면서 내년에 ‘유치원 난민’이 대거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폐원 의사를 밝힌 유치원은 총 85곳. 교육청에 신고하지 않고 폐원을 고려 중인 유치원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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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경영난이나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유치원 문을 닫으려면 학부모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절차를 어기면 유치원 운영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유치원이 폐원을 고수하면 강제로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립유치원장들 사이에선 “3000만원 내고 폐원하는 게 속 편하다”는 말이 나온다.

교육부는 폐원이나 모집을 중지하는 사립유치원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인근 국공립 유치원에서 원아를 우선 수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국공립 유치원은 사립에 비해 돌봄시간이 짧고 통학버스도 안 다니기 때문이다. 5, 7세 자녀를 둔 이모(36·서울 진관동)씨는 “지금 유치원은 오후 5시30분까지 아이를 돌봐주는데 인근의 국공립은 오후 2시면 끝난다. 맞벌이 부부는 둘 중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는 아이를 맡길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유치원 폐원을 앞둔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에게 ‘다른 유치원으로 옮기자’고 했더니 ‘엄마 말 잘 들을 테니 친구랑 떨어뜨리지 말아 달라’며 울더라. 폐원했을 때 아이가 상처받을 게 벌써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교육부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모 협동형 유치원을 제시했지만 현장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경기도 하남시 예원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던 학부모들은 폐원 통보를 받은 뒤 협동형 유치원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유치원으로 쓸 공간을 구하지 못해서다. 이 유치원에 다섯 살 아들을 보내고 있는 도유진(35·경기도 하남시)씨는 “경기도교육청과 하남시 등을 상대로 공공시설 임대 등 지원을 요청했지만 ‘검토해 보겠다’는 말뿐이다. 공공시설 임대나 재정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정부와 유치원의 기싸움에 아이들만 피해를 본다고 하소연한다. 다섯 살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폐원을 통보받은 이모(40·서울 도봉구)씨는 “정부는 사립유치원을 옥죄기만 하고, 유치원은 죽기살기로 버티면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언제까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져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민희·남윤서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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