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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의료 양극화와 비효율의 두마리 토끼 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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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대한민국 의료는 매우 역설적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병상은 2배 가까이 많다. 하지만 전국을 56개 진료권으로 나눴을 때 입원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큰 종합병원이 없는 입원취약지는 14개 곳이나 된다. OECD 국가에 비해 병상은 16만개나 더 많지만 전국 진료권 4곳 중 1곳은 입원취약지이고 전 국민 중 7명 중 1명은 제대로 된 병원이 없는 곳에 살고 있다. 여기서 입원취약지는 입원환자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300병상 규모 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을 말한다. 당연히 입원취약지는 전국 평균에 비해 사망률이 1.3배나 더 높고, 전국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과 가장 낮은 지역의 사망률 격차는 2배나 된다. 대한민국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죽고 살 확률이 크게 달라지는 의료 수준이 심각하게 양극화된 나라이다.

대도시 주변 지역도 입원취약지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가 블랙홀처럼 환자를 빨아들인 결과 대도시 주변에는 제대로 된 종합병원이 생겨나지 못한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도 지역 진료권 중 절반이 이상은 전국 평균에 비해 사망률이 높다.

큰 병원이 없는 시골이나 큰 병원이 많은 대도시나 인구 당 병상 수는 비슷하다. 시골에도 큰 병원만 없지 작은 병원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큰 종합병원이 없으면 작은 병원이 많아도 지역 주민들은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어렵다.

우리나라 병원은 동네 의원에서 시작해서 잘되면 병원을 짓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시장에서 병원이 자생적으로 성장하도록 내버려두면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큰 종합병원이 생겨나기 어렵다. 선진국처럼 지역별로 수요에 맞게 병원을 계획적으로 공급하거나 육성해야 한다.

큰 종합병원은 없고 작은 병원 병상만 많으면 사망률이 높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진료가 늘어난다. 우리나라에서 병상이 1개 늘어나면 연간 입원환자가 19명 늘어난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병상 수를 OECD 국가 수준으로 줄이면 연간 불필요한 입원을 약 3백만 건을 줄일 수 있고 낭비되는 진료비 6조원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 양극화와 비효율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면 한편으로 입원 취약지에 큰 종합병원을 육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나치게 많은 병상을 줄여나가야 한다. 시도가 수요에 맞게 병상의 총량을 규제하고 입원 취약지에 큰 종합병원을 만들도록 하는 지역병상총량제를 도입해야 한다. 최근 지역병상총량제가 담긴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사위에서 발목을 잡혀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는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하루빨리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서 국민들이 어디에 살든지 질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국민들의 소중한 보험료로 조성된 건강보험재정이 불필요한 입원으로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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