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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나이키 신발 신고, 헬로키티 옷 입는 평양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평양 중앙동물원을 찾은 평양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중앙동물원을 찾은 평양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가짜 아디다스와 헬로키티-김정은이 평양의 소수 엘리트에게 서구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제품과 스마트폰, 심지어 일종의 아마존 같은 거래 사이트를 허용하고 있다.’

김정은이 보낸 아디다스 놓고 짝퉁 신발 생산 #외국인 유심칩 구입해 무제한 인터넷 사용 #자본주의 상징 같은 헬로키티 디자인도 곳곳에 #평양 엘리트만 혜택…어린이 20%는 성장 장애

 북한이 서방 언론을 적극적으로 초청해 평양을 비롯한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북한을 방문한 후 변하고 있는 현장을 지난 24일(현지시간) 이렇게 전했다. 더 타임스를 비롯해 북한에 일주일가량 머문 서방 언론 측에 북한 안내원은 “직접 눈으로 보고 북한을 판단하라는 취지"고 말했다.

평양 신발공장에 다른 나라 브랜드 신발들이 전시돼 있다. 이를 참고해 제품을 제작한다. [가디언 영상 캡처]

평양 신발공장에 다른 나라 브랜드 신발들이 전시돼 있다. 이를 참고해 제품을 제작한다. [가디언 영상 캡처]

 평양 류원 신발공장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낸 선물인 아디다스 운동화가 생산라인 옆에 놓여 있었다고 가디언은 소개했다. 공장 안내원은 김 위원장이 다른 나라 운동화를 보내줘서 노동자들이 보고 만질 수 있다고 했다. 이 공장 전시장에는 푸마나 나이키 같은 브랜드의 가짜 제품으로 보이는 디자인이 전시돼 있었다. 아식스와 비슷한 로고가 달린 제품도 있었다.

 엘리트 집단이 모여 사는 평양 시내 국영 슈퍼마켓에서는 쇼핑객들이 가짜 푸마와 나이키 신발, 진짜 콜게이트 치약과 일본 위스키, 심지어 캘리포니아산 오일 등을 매대에서 살피고 있었다. 비싼 수입품을 파는 이 슈퍼마켓 밖에는 택시가 손님을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한 번 탈 때 많은 근로자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 요금을 받았다.

평양 창전거리에 교통경찰 오토바이와 택시가 대기해 있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창전거리에 교통경찰 오토바이와 택시가 대기해 있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더 타임스 취재진도 지난 9월 말 북한을 찾아 안내원이 동반한 패키지 여행을 했다. 취재진은 평양 공항에서 유심칩을 구매해 스마트폰으로 국제전화를 걸고 무제한으로 빠른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유심칩은 300달러 정도에 외국인만 구매가 가능하다.

 입국 시 물품 검사가 엄격했지만, 일관성이 없어서 어떤 사람은 여행 책자를 갖고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뺏겼다. 북한 곳곳에 붙어 있던 반미 포스터가 사라진 자리에 경제발전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일주일 넘게 안내원들과 동행했는데 그중 젊은 안내원은 가만히 있을 때면 스마트폰으로 캔디 크러시 게임을 했다.

 김 위원장의 변화에 대한 비전은 정치적이지 않았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대신 엄격하게 통제받아온 소수 엘리트의 삶이 외국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에 슬그머니 들어온 서구 소비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게 좀 더 즐거운 것이 돼야 한다고 결정한 것 같다고 했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거리에서 시민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거리에서 시민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평양 시민들은 전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지하철 통근자들 역시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메시지를 보내고 사진을 살피곤 했다. 헬로키티 같은 캐릭터가 담긴 옷이나 장신구도 볼 수 있었는데, 가디언은 그런 디자인은 북한이 오랫동안 비난해온 자본주의 세계의 상징 같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내년 10월 완공 예정으로 원산에는 해변 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리조트 사업 설명서는 중국어와 영어, 러시아어로 제공되고 있었다. 호텔 10개와 수십 개의 식당, 수력발전소, 연간 40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측한 놀이공원 등 수십억 달러 상당의 투자 목록이 담겨 있었다. 김 위원장은 리조트가 밀집한 스페인 코스타 블랑카의 성공 사례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지난해 대표단을 파견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평양 창전거리에서 개학한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창전거리에서 개학한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이런 변화는 운이 좋은 소수만을 위한 것이고 대부분 북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과 빈곤의 고통에 직면해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북한 어린이 5명 중 1명은 영양 부족으로 성장 장애를 겪고 있으며 성인의 약 40%가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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