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터진「외채 중압 증」에 긴급처방|미, 외채탕감 제의 배경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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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이 10일 새로운 제3세계의 외채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나선 것은 최근 베네수엘라 사태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3세계의 외채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제2, 제3의 베네수엘라 사태가 연쇄적으로 일어날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3백30억 달러의 외채를 안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원리금 상환과 이자 지불을 위한 외화부족을 해결키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내핍정책을 추진하다 이에 항의하는 시민폭동이 일어나 2백50여명이 사망하고 2천여 명이 부상했다.
세계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일컬어지던 외채 문제가 과도한 채무국의 국내정치 및 사회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인 것이다.
이번 미국의 외채 문제해결 방안은 ▲세계은행(IBRD)과 IMF 등 국제금융기관의 기금을 늘려 ▲이를 담보로 이들 기구들이 채무국들의 외채지불을 보증하며, 채권을 갖고 있는 상업은행들은 이같은 보증을 받는 대신 채무의 일부를 탕감해 주라는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안은 85년 당시 재무장관이었던「베이커」가 제안, 소위「베이커 계획」으로 불려진 안보다는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베이커」안은 채무국의 경제성장과 새로운 차관을 바탕으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베이커」안을 지금까지 고수,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의 해결방안을 거부해 왔다. 미국이 88년 6월 서방 7개국 정상회담에서 서독과 프랑스의 외채일부 탕감 안에 마지못해 응한 것이나 그후 몬트리올 재무장관회의에서 외채문제해결에의 일본의 적극적 역할을 제시한 일본의 「미야자와」계획을 냉대해 왔었다.
그러나「베이커」계획은 채무국들의 지불능력을 의심한 민간은행들의 신규차관기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번 신임「브래디」재무장관의 안은 종전「베이커」안과 비교해 볼 때 ▲외채문제해결에 있어 성장이 본질적 문제이고 ▲채무국들이 개혁 없이 성장을 이룰 수 없으며 ▲해결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일부 외채를 탕감하고 국제금융기구가 외채지불보증을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금융기구가 지불보증을 함으로써 민간은행들이 신규차관을 제공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안은 신규차관제공이나 탕감 액 조정을 여전히 민간은행과 채무국 당사자에게 맡기고 있고 국제금융기구가 지불보증을 하기 위한 새로운 기금조정이 어떻게 이뤄질 것이냐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기금확대와 관련,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려 온 미국은 일본의 IMF 증자제한 등에 소극적 입장을 보여 왔다.
미국은 스스로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국제금융기구에 많은 액수를 증자할 형편이 못되고 일본이나 서독 등 무역흑자로 돈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들의 증자 액이 늘어날 경우 이들 기구에서의 발언권 약화를 우려해 온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새 외채 해결방안은 획기적인 것임엔 틀림없으나 미국이 국제금융기구에서의 스스로의 발언권 약화를 감수하면서 기금조성에 얼마나 적극적이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는 것 같다.
일본은「브래디」안을 즉각 환영했다. 민간 은행들도 일단 환영하면서도 구체적 안이 마련되는 것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88년 말 현재 제3세계의 외채는 1조3천2백억 달러로 멕시코의 외채상환중단 선언으로 야기된 82년. 외채위기 발생당시 8천억 달러보다 5천2백억 달러가 늘어났다.
이 때문에 88년 한해동안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흘러간 돈이 가난한 나라로 들어간 돈보다 4백30억 원이 더 많은 등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는 더욱 악화되어 왔다.

<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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