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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풍산개는 무상급식, 문재인 입양견은 사비급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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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와대가 지난 9일 태어난 풍산개 ‘곰이’ 새끼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곰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가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선물했다. [뉴스1]

청와대가 지난 9일 태어난 풍산개 ‘곰이’ 새끼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곰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가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선물했다. [뉴스1]

“혹시 풍산개 분양받고 싶은 분 있어요?”

‘퍼스트 애니멀’ 서로 다른 대접 #풍산개는 국유재산, 분양도 안 돼 #MB가 키우던 꽃사슴 26마리는 #퇴임 후 농장에 팔린 뒤 행방 몰라 #정권 바뀔 때마다 기구한 운명

최근 한 청와대 관계자가 지인들과 만난 사적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로 준 풍산개 ‘곰이’가 낳은 6마리의 새끼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실제로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사람이 나왔다.

일부 청와대 참모진들도 새끼들의 이름을 일일이 붙여주며 “저 건 내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칫국 부터 마신 셈이 됐다. 풍산개는 문 대통령의 소유가 아닌 국유재산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6일 “북한에서 풍산개를 선물 받은 뒤 이에 대한 분류를 놓고 고민이 있었다”며 “논의 끝에 풍산개는 국유재산으로 분류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풍산개가 국유재산이기 때문에 문 대통령을 포함한 어떠한 개인의 결정에 따른 사적인 분양은 불가능하다”며 “향후 풍산개와 강아지들을 국립시설에 전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25일 오후 트위터를 통해 “9일에 태어난 ‘곰이’의 새끼들”이라며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관저 앞마당에서 강아지 6마리를 살펴보는 사진을 올렸다.

 6마리 중 암컷과 수컷이 각각 3마리 씩이다. 곰이는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로, 한국에 와서 새끼 6마리를 낳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트위터를 통해 “두 마리의 선물에 여섯 마리가 더해졌으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개들은 보통 2개월 임신 기간을 가지니 새끼를 밴 상태에서 남쪽으로 온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남북관계의 일이 이와 같기만 바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곰이와 함께 선물한 수컷 개의 이름은 ‘송강’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식대의 경우 손님 접대 등 공사(公私)가 정확히 구분이 안 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 식대와 개·고양이 사료값 등 명확히 구분 가능한 것은 별도로 내가 부담하는 것이 맞고, 그래도 주거비는 안 드니 감사하지 않느냐”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초반에 대통령 사비로 처리한 것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개 사료값이었다”며 “마루가 아파서 약이 섞인 사료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마루’는 문 대통령이 양산에서 키우던 반려견이다. 북한에서 풍산개를 선물하기 전까지 문 대통령은 마루를 비롯해 유기견 출신의 ‘토리’와 유기묘 출신인 ‘찡찡이’ 등 3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웠다. 사료값은 문 대통령의 사비로 지출됐다.

그러나 북한에서 온 ‘풍산개 식구’들의 경우는 다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 소유의 다른 동물들과 달리, 풍산개들은 엄연히 국유재산이기 때문에 사료값도 현재 청와대 예산에서 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키운 꽃사슴. [중앙포토]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키운 꽃사슴. [중앙포토]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정원인 녹지원에서 암사슴 두 마리와 수사슴 한 마리를 키웠다. 녹지원의 꽃사슴은 ‘MB 청와대’의 상징물이 됐다. 5년 뒤 녹지원의 꽃사슴은 26마리로 늘어났다. 꽃사슴 떼는 정원의 꽃과 나뭇잎을 마구 먹어치우고 곳곳에 오물을 남겼다. 녹지원을 지키는 경호원들은 맑은 날에도 커다란 우산을 펼쳐 사람을 위협하는 꽃사슴을 쫓는 데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청와대 정원의 주인이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를 떠나면서 주민들에게 선물 받은 ‘새롬이’와 ‘희망이’라는 두 마리 진돗개가 꽃사슴의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새롬이와 희망이는 출퇴근할 때마다 나와서 반겨줍니다. 기회가 되면 새롬이, 희망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2013년 3월 MB의 꽃사슴 26마리는 서울대공원으로 갔다. 대공원 측은 이 사슴을 다시 경기도에 있는 민간농장에 팔았다. 그 뒤로 청와대의 상징물이던 사슴의 향방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일각에서는 “민간농장으로 간 사슴들이 건강원으로 갔을 수도 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그 무렵 청와대의 한 친박계 인사는 사석에서 “우리 새롬이와 희망이가 저 꽃사슴들을 물어뜯는 것을 보고 싶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같은 당 출신이지만, 당내에서 오랫동안 권력투쟁을 벌어온 사이다. 이명박 청와대의 상징이었던 꽃사슴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청와대 밖으로 나간 건 친이·친박의 갈등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반 분양한 진돗개. [중앙포토]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반 분양한 진돗개.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12월 두 마리 진돗개가 낳은 새끼 5마리를 일반에 분양했다. 각각  ‘평화’ ‘통일’ ‘금강’ ‘한라’ ‘백두’라는 이름을 가진 진돗개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탄핵과 구속의 과정을 밟는 동안 청와대에 남은 진돗개는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됐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혈통을 보전할 수 있게 분양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키우던 진돗개 ‘청돌이’를 퇴임 이후 논현동 사저로 데리고 갔다. 청와대에 남겨뒀던 풍산개와 셰퍼드는 박근혜 정부 때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청와대에 남겨진 박 전 대통령의 진돗개도 유기 논란 끝에 3마리는 일반에 분양됐고, 4마리는 진돗개혈통보존협회로 보내졌다. 권력의 부침이 청와대 반려동물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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