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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영업하란 얘기…황망하다" 수수료 인하에 카드사 패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황망합니다"

카드업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26일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을 발표한 금융당국이 우대 수수료율 구간을 현행 5억원에서 30억원으로 확대하고 총 8000억원 규모의 수수료 추가 인하 방안을 추진키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상인단체로 구성된 불공정 카드수수료 차별철폐 전국투쟁본부 회원들이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광장에서 '불공정 카드수수료 차별철폐 1차 자영업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상인단체로 구성된 불공정 카드수수료 차별철폐 전국투쟁본부 회원들이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광장에서 '불공정 카드수수료 차별철폐 1차 자영업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카드사들은 갑작스럽게 수수료 인하 방침을 통보받았다.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익 여파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다. 한 관계자는 "TF가 지난 4월부터 구성이 돼 수차례 회의하고 수수료 인하 폭을 조정했음에도 금융당국은 23일 사장단 회의 때가 돼서야 숫자를 처음 꺼냈다"면서 "지금도 협회 중심으로 각 사가 구체적인 충격을 산출하고 있는데 얼마나 충격이 클지 답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확실한 건 앞으로 카드사들이 수수료 부문에서만큼은 마이너스 장사를 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마이너스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공산이 크다. 한 전업계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들의 1년 순익이 1조7000억원인데 이 중 절반은 40조원 규모로 굴리는 카드론에서 나온다"며 "수수료 수익이 나머지 절반이라고 쳐도 1조가 채 되지 않는데 금융당국이 수수료 인하 여력을 총 1조4000억원으로 잡았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일갈했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 역시 "사업을 해서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쳐내라는 건 결국 마케팅비용을 어떻게든 줄이라는 얘기"라면서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무이자할부, 가맹점 할인, 포인트 제공 등 혜택은 줄고 연회비는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우대수수료율 적용 가맹점 범위를 매출 규모 30억원 이하로 확대할 경우 전체 가맹점의 93% 정도가 이 범위 안에 들어올 것”이라고 밝힌데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실제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가맹점이 우대수수료율 적용 대상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한 은행계 카드사 관계자는 "업계에서 추산하고 있는 30억원 이하 가맹점 숫자는 전체의 99%"라며 "도대체 93%라는 게 어떤 근거로 나온 숫자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수수료 인하의 방향성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우대 수수료율 적용 범위를 과도하게 넓히기보단 기존 우대수수료율 적용 가맹점에 대해 수수료율을 아예 면제해주는 식으로 하는 게 정책 목표에 더 맞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이 경우 카드사들은 현행 0.3%로 부과되는 밴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차라리 부담이 덜 하다.

은행계 카드사 관계자는 "이미 기존 영세ㆍ중소 자영업자에게는 역마진 사업을 해왔다"면서 "차라리 연 매출 5억원 이하에 해당하는 90%가량 가맹점의 수수료를 면제하는 대신 10% 정도 되는 5억원 초과 가맹점에게 시장가격대로 수수료율을 받게 하면 시장이 더 건전해지는 것은 물론 정부 정책 목표에도 부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드사들은 정부에 "살길을 열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간 암암리에 막혔던 부가서비스 변경을 보다 자유롭게 열어달란 주장이다. 금감원은 카드 상품의 약관 의무 유지 기간이 3년으로 정해진 2016년 이후 지금까지 한 차례도 부가서비스 축소를 위한 약관 변경을 승인해주지 않았다. 소비자 혜택 축소가 그 원인이었다.

또 다른 은행계 카드사 관계자는 "출시 후 3년을 넘긴 상품들에 대해선 금융당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부가서비스 변경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라며 "수익자 부담 축소 방안을 일시적으로 시행하면서 카드사들이 살길을 점진적으로 연다면 이는 이치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카드업계는 구조조정 칼바람 앞에 놓여있다. 이달 초 카드ㆍ캐피탈ㆍ커머셜 등에서 총 400여명의 인력을 감축기로 결정한 현대카드가 구조조정의 포문을 열었다. 한 기업계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 인력의 구조조정은 물론 밴 대리업 업자들이나 카드모집인 등 관련 업권의 힘없는 자영업자들까지 줄도산한다면 업권 절반에서 곡소리가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약관 수정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해 가맹점과 소비자에 대한 비용을 줄이지 못하는 구조에 놓인 카드사들은 결국 구조조정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금 벌써 몇몇 기업계 카드사들이 시장에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만큼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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