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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꽃사슴 26마리 사라졌다···청와대 동물들 기구한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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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혹시 풍산개 분양받고 싶은 분 있어요?”

최근 한 청와대 관계자가 지인들과 만난 사적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로 준 풍산개 ‘곰이’가 낳은 6마리의 새끼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실제로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사람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5일 청와대 관저 앞마당에서 풍산개 '곰이'의 새끼 6마리를 살피고 있다. '곰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가 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선물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5일 청와대 관저 앞마당에서 풍산개 '곰이'의 새끼 6마리를 살피고 있다. '곰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가 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선물했다. 청와대 제공

일부 청와대 참모진들도 새끼들의 이름을 일일이 붙여주며 “저 건 내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칫국 부터 마신 셈이 됐다. 풍산개는 문 대통령의 소유가 아닌 국유재산이기 때문이다.

“풍산개 8마리는 명백한 국유재산”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6일 “북한에서 풍산개를 선물 받은 뒤 이에 대한 분류를 놓고 고민이 있었다”며 “논의 끝에 풍산개는 국유재산으로 분류가 됐다”고 설명했다.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관저 앞 마당에서 지난 9일 태어난 풍산개 곰이의 새끼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관저 앞 마당에서 지난 9일 태어난 풍산개 곰이의 새끼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그는 “풍산개가 국유재산이기 때문에 문 대통령을 포함한 어떠한 개인의 결정에 따른 사적인 분양은 불가능하다”며 “향후 풍산개와 강아지들을 국립시설에 전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25일 오후 트위터를 통해 “9일에 태어난 ‘곰이’의 새끼들”이라며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관저 앞마당에서 강아지 6마리를 살펴보는 사진을 올렸다. 6마리 중 암컷과 수컷이 각각 3마리 씩이다.

곰이는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로, 한국에 와서 새끼 6마리를 낳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트위터를 통해 “두 마리의 선물에 여섯 마리가 더해졌으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개들은 보통 2개월 임신 기간을 가지니 새끼를 밴 상태에서 남쪽으로 온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남북관계의 일이 이와 같기만 바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곰이와 함께 선물한 수컷 개의 이름은 ‘송강’이다.

“국유물의 사료는 청와대 예산으로 충당”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식대의 경우 손님 접대 등 공사(公私)가 정확히 구분이 안 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 식대와 개ㆍ고양이 사료값 등 명확히 구분 가능한 것은 별도로 내가 부담하는 것이 맞고, 그래도 주거비는 안 드니 감사하지 않느냐”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북에서 온 풍산개 '곰이'가 새끼 6마리를 낳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북에서 온 풍산개 '곰이'가 새끼 6마리를 낳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초반에 대통령 사비로 처리한 것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개 사료값이었다”며 “마루가 아파서 약이 섞인 사료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마루’는 문 대통령이 양산에서 키우던 반려견이다. 북한에서 풍산개를 선물하기 전까지 문 대통령은 마루를 비롯해 유기견 출신의 ‘토리’와 유기묘 출신인 ‘찡찡이’ 등 3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웠다. 사료값은 문 대통령의 사비로 지출됐다.

2016년 2월. 당시 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문재인 대통령이 양산 자택 뒷산에서 풍산가 '마루'와 산책을 하고 있다. 강태화 기자

2016년 2월. 당시 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문재인 대통령이 양산 자택 뒷산에서 풍산가 '마루'와 산책을 하고 있다. 강태화 기자

그러나 북한에서 온 ‘풍산개 식구’들의 경우는 다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 소유의 다른 동물들과 달리, 풍산개들은 엄연히 국유재산이기 때문에 사료값도 현재 청와대 예산에서 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권 따라 운명 달라진 ‘퍼스트 애니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정원인 녹지원에서 암사슴 두 마리와 수사슴 한 마리를 키웠다. 녹지원의 꽃사슴은 ‘MB 청와대’의 상징물이 됐다.

청와대 본관 앞뜰에 나들이 나온 사슴 가족들.

청와대 본관 앞뜰에 나들이 나온 사슴 가족들.

5년 뒤. 녹지원의 꽃사슴은 26마리로 늘어났다. 꽃사슴 떼는 정원의 꽃과 나뭇잎을 마구 먹어치우고 곳곳에 오물을 남겼다. 녹지원을 지키는 경호원들은 맑은 날에도 커다란 우산을 펼쳐 사람을 위협하는 꽃사슴을 쫓는 데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청와대 정원의 주인이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를 떠나면서 주민들에게 선물 받은 ‘새롬이’와 ‘희망이’라는 두 마리 진돗개가 꽃사슴의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새롬이와 희망이는 출퇴근할 때마다 나와서 반겨줍니다. 기회가 되면 새롬이, 희망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서울대공원에 간 사슴은 어디로?

2013년 3월. MB의 꽃사슴 26마리는 서울대공원으로 갔다. 대공원 측은 이 사슴을 다시 경기도에 있는 민간농장에 팔았다. 그 뒤로 청와대의 상징물이던 사슴의 향방을 아는 사람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일각에서는 “민간농장으로 간 사슴들이 건강원으로 갔을 수도 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그무렵 청와대의 한 친박계 인사는 사석에서 “우리 새롬이와 희망이가 저 꽃사슴들을 물어뜯는 것을 보고 싶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은 같은 당 출신이지만, 당내에서 오랫동안 권력투쟁을 벌어온 사이다. 이명박 청와대의 상징이었던 꽃사슴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청와대 밖으로 나간 건 친이·친박의 갈등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에서 이웃 주민들에게 진돗개를 선물 받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에서 이웃 주민들에게 진돗개를 선물 받고 있다. 뉴시스

반복되는 ‘동물 유기’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12월 두 마리 진돗개가 낳은 새끼 5마리를 일반에 분양했다. 각각  ‘평화’, ‘통일’, ‘금강’, ‘한라’, ‘백두’라는 이름을 가진 진돗개였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반에 분양한 진돗개 5마리.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반에 분양한 진돗개 5마리.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탄핵과 구속의 과정을 밟는 동안 청와대에 남은 진돗개는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됐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혈통을 보전할 수 있게 분양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키우던 진돗개 ‘청돌이’를 퇴임 이후 논현동 사저로 데리고 갔다. 청와대에 남겨뒀던 풍산개와 셰퍼드는 박근혜 정부 때 동물원으로 갔다.

2012년 9월 운동을 나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안기는 ‘청돌이’. [중앙포토]

2012년 9월 운동을 나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안기는 ‘청돌이’. [중앙포토]

청와대에 남겨진 박 전 대통령의 진돗개도 유기 논란 끝에 3마리는 일반에 분양됐고, 4마리는 진돗개혈통보존협회로 보내졌다. 권력의 부침이 청와대 반려동물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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