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부터 복수노조 시대 … 노조는 조합원들 의식한 선명성 경쟁 벌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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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내년부터 개별 사업장 내 복수 노조가 허용된다. 지금까지는 합병했거나 조직 대상이 다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복수 노조가 허용될 뿐 조직 대상이 중복되는 노조의 설립은 불가능했다.

◆도입 초기엔 혼란 불가피=복수 노조 시대에는 상급단체는 물론 각 노조 간 경쟁으로 노사관계의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내년부터 차별 금지 규정 등이 시행되면서 비정규직 관련 갈등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양대 노총의 조직 확대 경쟁과 계파 혹은 정파별 노.노 간 갈등으로 복수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복수 노조는 노조 간 갈등이나 복잡한 협상 과정 때문에 회사의 노무관리 비용을 증가시킨다는 게 문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최재황 정책본부장은 "복수 노조가 되면 노조 측 교섭위원 수가 많아져 협상시간이 많이 걸리고 요구 수준이나 내용이 달라 합의점을 찾기 힘들다"며 "선명성 경쟁 내지 주도권 다툼이 생기면 요구 수준이 계속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사의 진짜 실력 드러난다=내년부터는 복수 노조 허용과 함께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이 금지된다. 복수 노조 허용이 노동계의 자주적인 단결권을 옹호한 것이라면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는 노조로 인한 과도한 비용 부담을 피하려는 사용자 측의 요구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작정 노조가 늘어나는 것을 경제원리에 의해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 노조가 허용되면 설립 신고만 하고 노조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휴면 노조'를 통해 노무관리를 해온 몇몇 대기업이 노동계의 집중적인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일부 대기업 노조를 제외하고는 노조 전임자 급여를 조합비로 충당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조합비 부담이 지금보다 더 높아진 상황에서 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요구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경총 이형준 법제팀장은 "복수 노조가 생기더라도 조합원들의 요구에 잘 부응하는 노조가 조합원의 선택을 받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내 노사정 합의 쉽지 않을 듯=복수 노조 금지규정은 97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본문에서 삭제됐으나 사업장 단위의 복수 노조 설립은 두 차례에 걸쳐 유예됐다. 한국외국어대 이정(법학) 교수는 "헌법상 권리인 단결선택권과 노조 설립의 자유가 부칙에 의해 제한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10년 만에 해소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노동조합법에는 '노동부 장관은 2006년 말까지 복수 노조 하의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단체교섭 방법과 절차 등 필요한 사항을 강구해야 한다'고 돼 있다. 문제는 이를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대화의 틀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복수 노조 관련 창구 단일화 문제에 합의할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노사 간에 견해가 크게 엇갈리고 있는 복수 노조와 노조 전임자 문제를 연내에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도 복수 노조 허용이 노동세력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또 한번 복수 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를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노동연구원 전명숙 박사는 지난달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복수 노조 시대가 노사관계의 위기가 될지 모르는데 노사정의 논의는 진전이 없고 서로 눈치만 보는 것 같다"며 "한쪽이 먼저 용감하게 시행 유보를 제안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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