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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장비·전문인력 결합한 연구지원시설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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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성환 경북대학교 화학과 교수

김성환 경북대학교 화학과 교수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필자는 졸업 논문에 필요한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 플로리다 주립대에 설치되어 있는고자기장연구소초고분해능질량분석센터를 방문하게 됐다. 미국 정부로부터 매년 20억원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센터는 최고 성능의 연구장비와 다수의 전문인력들을 갖추고 있었다. 박사급 이상의 전문인력들은 연구장비를 처음 사용하는 필자가 정확하고 정밀하게 분석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필자는 우수한 연구장비와 박사급 전문인력의 전문성이 결합된 전문연구지원시설이 과학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게 됐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과학계와 산업계에는 한가지 올바르지 못한 인식이 있었다. 우수한 연구장비를 설치하면 박사급 전문인력이 없어도 양질의 연구결과들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우수한 과학 연구시설·장비를 갖추기 위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5% 내외인 약 1조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연구 및 기술개발 현장에서 연구장비를 이용한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고가의 연구장비를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외부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인력 및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는 ‘제2차 국가연구시설장비 운영·활용 고도화 계획’을 수립해 올해 1월에 발표했다. 제2차 고도화 계획은 ‘전문화된 연구지원시설 형성 및 전문인력 양성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전문연구지원시설에서는 시료 의뢰를 통한 시험 분석 외에도 결과 해석을 통한 연구 컨설팅, 연구장비 사용자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대, 캘리포니아주립대(데이비스 캠퍼스)에서는 각각 29개와 17개의 화학, 생명 분야 전문연구지원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에서는 질량분석, 임상연구센터, 초미세구조분석 분야에 특화된 6개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카롤린스카 의과대의 경우 의·생명 분야에서만 50여개의 시설을 구축·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전문연구지원시설인 ‘핵심연구지원시설(Core-Facility)’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노력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학기술혁신본부)와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의 주도하에 수행되고 있다.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대학의 핵심연구지원시설 조성을 지원하고 있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전문인력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함께 갖춰진다면 안정적인 환경에서의 전문 인력의 전문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정책적인 노력과 연구 및 산업 현장에서의 노력이 함께 결합한다면 대한민국의 일자리 창출과 과학기술 발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김성환 경북대학교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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