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조기유학돋보기] '묻지마' 조기유학 죽도 밥도 안 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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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는 우리를 또 다시 놀라게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조기유학을 떠난 초.중.고생이 서울에서만도 7000여 명이라고 한다. 하루 19명꼴로 떠난 셈이다.

아마 한국의 학부모 중 자녀의 조기유학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라 안팎으로 경쟁이 심하고 사람만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우리나라에서 각 개인의 외국어 능력은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게다가 외국어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일정 기간 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다 보니, 아빠만 남겨두고 떠난다거나 심지어 아이만 떠나보내는 위험천만한 경우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본 바에 따르면 조기유학은 가족 모두의 행복과 불행을 담보로 한다. 아이와 부모 모두가 치러야 하는 몸 고생과 마음고생, 그리고 막대한 비용은 아이가 잘 자라주기만 한다면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부적응이나 성적부진, 또는 가족이 헤어져 살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가정의 평화를 송두리째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

'조기유학만 가면 다 잘될 것'이라고 믿었던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가면서 이러한 문제들에 부닥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영어 습득과 학교 적응, 학교 공부 따라가기는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고, 아이들은 한국에서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다. 게다가 영어를 못한다고, 또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왔다고 받은 무시와 편견, 외로움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결코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1년 반 후 귀국하면서 깨달은 것은 조기유학을 떠나는 것만으로 아이의 성공적인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엄청난 노력과 부모의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자녀의 조기유학을 결정하기 전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미래에 관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아이를 '영어를 잘 하는 한국인'으로 키울 것인지 아니면 조기유학을 떠나는 순간부터 '얼굴만 한국인인 미국인'으로 키울 것인지, 결국 어떤 쪽이 아이나 부모에게 모두 유익한 것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그 고통을 참아낼 만한 나이와 성격이 되는지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또 '가족 전체의 행복과 미래'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김희경

김희경씨는 2001년 8월 당시 초등학교 2, 5학년이었던 아들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1년6개월 만에 귀국했다. 자녀의 조기유학을 꿈꾸는 엄마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생각으로 '죽도 밥도 안 된 조기유학'이란 책을 썼다. 브레인컴퍼니 이사로 근무하면서 고려대 신문방송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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