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교수의열린유아교육] 영어, 초등생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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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아들은 지금 영어 열풍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를 배우면 장래 유리한 점이 많다. 하지만 영어를 언제, 어떻게 배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영어를 일찍 시작한 것이 도리어 방해가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ten'을 포함한 영어 단어를 의미 파악 없이 외웠던 어떤 아이가 't'가 들어간 단어만 보면 무조건 'ten'으로 읽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유치원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고 말도 한 단어로만 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화가 나면 무조건 "No"하며 소리만 질렀다. 또래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 돼 친구도 없었다. 그 또래 아이들이 네 단어 이상의 문장으로 의사소통 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언어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원인은 엄마가 아기 때부터 영어로만 말했기 때문이었다. 영어가 일상생활에 쓰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들은 소리의 의미를 파악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영어 단어를 의미 없이 나열할 뿐이었고 우리말 실력은 기초 수준 이하였던 것이다. 요즈음 영어 조기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 중에는 우리말로 의사소통을 못하고 웅얼거리기만 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

세계적 언어학자인 촘스키는 어느 한 종류의 언어를 잘 배우면 다른 언어도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유치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쳤던 대만의 경우 아이들의 모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진다고 1997년부터 유아기에는 영어 교육을 금지시켰다.

영어 교육은 아이들이 모국어를 익힌 뒤 시작하는 것이 좋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배우기 시작해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경기도 양평군 상심리의 한 교회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초등학교에서 가르쳐도 늦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영유아기에는 외국인들이 영어로 이야기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하거나 TV를 함께 보며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쓰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여 의사소통의 욕구를 키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집 손녀는 유치원 때 엄마.아빠와 홍콩 여행을 다녀 온 뒤 놀랐다는 모습으로 "할머니, 홍콩 사람들 영어로 이야기해"라고 하였다. 이 아이는 올해 초등학생이 된 후 아무런 저항감 없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 했다.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이원영 교수는 31년째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유아교육학회 회장,세계유아교육기구 한국위원회 회장 등을 역임한 유아교육 전문가다.『아이는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다』『엄마 나도 할 수 있어요』『우리아이 좋은 버릇들이기』등 20여권의 유아교육 관련 저서를 냈다.현재 직장에 다니는 세 딸을 위해 손녀(7세)와 손자(5세,2세)들을 직접 돌보고 있는 ‘할머니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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