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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와 뱃살만 늘지만 행복해, 난 싱글이니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반려도서(53)

『지갑의 속삭임』

무레 요코 지음·박정임 옮김 / 문학동네 / 1만2000원

지갑의 속삭임

지갑의 속삭임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새 중년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어떻게든 한 달을 버티면 월급이 들어오니 그걸 믿고 돈을 써댔다.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니 스트레스 해소니 하며 돈을 썼다. 가끔 상여금으로 목돈이 들어오면 돈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고 ‘티 나게’ 쓰기 위해 그 돈으로 전부 기모노를 샀다. 회사를 그만둔 뒤 작가로 최고 수입을 기록했을 때도 수입이 늘어났으니 그 대가로 분명 나쁜 일이 생길 거라는 의심병에 걸려 그 불안을 떨치기 위해(!) 그 돈을 죄다 기모노를 사들이는 데 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느덧 쉰 살이 넘었지만 계획성 없는 소비패턴은 여전하고 갚아야 할 대출금은 남아 있다. 집이라도 줄여보려 하지만 작은 집에서 살려면 짐도 적어야 하니 물건을 처분하기 시작한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바자회로도 보내고 업자에게 맡겨 처분해 보지만 버리는 일도 돈과 체력이 필요한 힘든 일이다.

통장잔고를 바라보며 노후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노후에 두 친구와 함께 ‘상조회’라고 이름 붙인 공동주택에서 같이 살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노후 문제가 결국은 한 손에 계산기를 드는 일이라니 서글프다. “저축이 인생의 목적도 아닌걸”이라며 인생에서 적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저축 없는 삶을 살았다.

끝까지 도쿄에서 살기를 고집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롯폰기 힐스와 같은 번화가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새 거리감이 느껴져서다. 낙향하면 생활비를 줄일 수 있겠다는 계산도 한몫했다. 어쩌다 보니 낙향이 도망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흙을 밟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흙 만지기는 싫은 건 또 어쩔 수가 없다.

『지갑의 속삭임』은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카모메 식당』의 작가 무레 요코가 쓴 중년의 싱글 라이프다. 혼자서 나이 드는 삶이 짠하기도 하고 철없기도 하다. 노후자금 문제를 비롯해 나잇살과의 전쟁, 싱글 친구들과의 에피소드 등 대책 없어 보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훔쳐볼 수 있다.

오십이 넘은 싱글에 까칠한 암고양이를 끌어안고, 본가의 주택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데다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며, 흰머리와 체지방만 늘어가지만 그녀는 대책 없이 행복하다. 이 책이 국내에도 많은 중년의 싱글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고, 채찍질(?)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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