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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닛산 회장, '부당거래'에 당했다?…체포 둘러싼 5대 궁금증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 겸 르노 회장.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 겸 르노 회장. [AP=연합뉴스]

 르노-닛산-미쓰비시 자동차 동맹을 이끌던 카를로스 곤(64·사진) 회장이 일본 검찰에 체포된 지 사흘이 지났다. 르노와 닛산이 각각 비상 경영 체계에 돌입했지만, 글로벌 2위 자동차 동맹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도쿄 검찰, 최장 20일 구속 수사 #유죄율 99%…"승리 확신해 체포" #NHK, "닛산 법무팀 직원 플리바겐" #지나친 장기 독재가 비극 불러

 20년간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며 자동차 왕국을 일궈낸 곤 회장은 언제쯤 공석에 나와 입을 열게 될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일 곤 회장 체포를 둘러싼 궁금증을 5가지로 정리했다. 일본 사법 체계 및 관행에 생소한 시장 투자자들이 참고할 만한 정보다.

①곤 회장 본인 해명, 언제쯤 들을 수 있나

 일본 형사사건 처리 절차는 한국과 비슷하다. 현행법에 따라 체포된 곤 회장은 보석 없이 48시간 동안 구금될 수 있다. 검찰은 이 기간에 변호인 입회 없이 곤 회장을 상대로 심문을 진행한다. 이후 구속 기간은 최장 20일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혐의가 입증되면 재판에 넘긴다. 현재 곤 회장이 받는 혐의는 최대 징역 10년 또는 1000만엔(약 1억원)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곤 회장이 원한다면 구속 기간 변호인을 통해 본인 해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은 최소 20일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소될 경우 법정에 서고, 불기소면 외부로 풀려난다.

②횡령 혐의 추가 입증 가능성은?

21일 일본 도쿄 중심가의 전광판 화면에 카를로스 곤 닛산·르노자동차 회장의 수사 상황을 전하는 NHK방송 뉴스가 흐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일 일본 도쿄 중심가의 전광판 화면에 카를로스 곤 닛산·르노자동차 회장의 수사 상황을 전하는 NHK방송 뉴스가 흐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체포 당시 밝혀진 곤 회장의 혐의는 회사에서 받은 본인의 보수를 축소 신고한 혐의(금융상품거래법 위반)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곤 회장이 2011년부터 5년간 닛산자동차로부터 받은 보수 99억9800만엔을 49억8700만엔으로 줄여서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FT는 현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이는 일본 검찰이 곤 회장에게 적용할 혐의 중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검찰 관행상 가장 간단한 혐의를 적용해 체포한 뒤, 더 큰 횡령죄를 적용해 기소할 것이란 예측이다.

 타츠오 우에무라 와세다대 법대 교수는 “사건이 얼마나 복잡하든 간에, 검찰은 향후 재판 승소가 확실한 혐의만 골라 수사에 착수한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 언론에는 곤 회장이 자택 구입에 회사 자금을 유용했다는 등의 추가 혐의가 흘러나오고 있다. 99%에 가까운 유죄율을 자랑하는 일본 검찰에 체포된 곤 회장의 앞날이 밝지 않다는 신호다.

③곤 회장, 전례 없는 ‘플리바게닝’에 당했나  

2016년 10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카를로스 곤 회장의 모습. [EPA]

2016년 10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카를로스 곤 회장의 모습. [EPA]

 그동안 일본 내에서 경영진이 회사 재무제표상 매출이나 이익 수치를 부풀린 혐의로 체포된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곤 회장 체포가 이례적인 이유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형을 받는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는 데 있다.

 FT는 곤 회장 사건이 일본에서 지난 6월 도입된 새 플리바게닝 제도의 두 번째 적용 사례라고 밝혔다. 플리바게닝은 유죄협상제라고도 불린다. 범죄자가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당사자 처벌을 합법적으로 낮춰주는 제도를 뜻한다. 쉽게 말해 ‘합법적 부당거래’다.

 NHK는 닛산 법무팀에 있는 외국인 임직원 한 명이 도쿄 검찰과 플리바게닝 거래를 했다고 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닛산 내부자가 곤 회장의 범법 내용과 증거를 검찰에 넘기고, 본인 처벌을 일부 피했다는 뜻이다. 닛산 측은 이와 관련된 공식 언급을 피하고 있다.

④일본 경영진이 곤을 불편해한 이유는?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자동차 사장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였다. [EPA]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자동차 사장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였다. [EPA]

 곤 회장은 브라질 태생으로 레바논에서 자라 프랑스 국적을 가졌다. 이 같은 배경과 그의 성향을 내향적인 일본인들이 불편하게 여겨왔다는 게 금융시장의 공통된 추측이다. 그는 1999년 파산 위기에 직면한 닛산에 와 회사를 부활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휘한 강한 카리스마가 일본 경영 풍토에 잘 맞았는지는 의문이다.

 일본 자산운용사 대표인 제스퍼 콜은 “일본 기업 지배구조를 관통하는 핵심 법칙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욕심 및 조작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곤 회장의 경영 방식에 불만을 가진 일본인들이 많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⑤그래도…그는 왜 한순간에 공개 몰락한 걸까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주가현황판에 표시된 닛산자동차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주가현황판에 표시된 닛산자동차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닛산의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사장은 곤 회장 체포 소식이 전해진 19일 밤 기자회견에서 여러 차례 곤의 경영방식이 남긴 폐해를 강조했다. 곤 회장은 1999년 닛산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부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살렸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곤의 카리스마 독재가 19년이나 지속했다는 데 있다. 사이카와 사장이 지나친 권력 집중을 문제 삼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네다공항에 착륙한 전용기에 검사들이 들이닥쳤을 때 곤 회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 셈이다.

 닛산은 곤 회장 없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갈 태세다. 노무라증권 마사타카 쿠누기모토 연구원은 “사이카와 사장이 이미 회사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 중이라 닛산의 실제 운영에는 별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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