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풍기 틀어 놓고 자다 죽었다, 범인은 누굴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7)

“거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고 죽이는 병원이에요.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다. 그럴만했다. 그 여성은 넘어지면서 손목이 부러졌다. 손목 골절이었다.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분명 두 발로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다. 걱정 없이 수술대에 누웠다. 하지만 수술장에서 다시 나왔을 때 그는 심장이 멎은 상태였다.

응급실로 실려 온 심근경색 환자, 3일 후 의식 회복

손목이 부러진 여자가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이었다고 했지만 수술장에서 다시 나왔을때 심장이 멎은 상태였다. 보호자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중앙포토]

손목이 부러진 여자가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이었다고 했지만 수술장에서 다시 나왔을때 심장이 멎은 상태였다. 보호자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중앙포토]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의사들은 번갈아 가며 그의 가슴을 눌렀다. 보호자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손목 수술하러 들어간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이다. 위험한 수술도 아니었다. 겨우 손목 수술 아닌가. 심장이 아닌 손목! 의사가 수술에 관해 설명할 때도 쉬울 거라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심장이 멎다니. 이건 명백한 의료사고였다. 수술방에서 무언가 끔찍한 사고가 벌어진 게 틀림없다.

하늘이 도운 걸까. 환자는 내가 근무하는 대학 병원으로 옮겨져 왔다. 나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인계받았다. 같이 온 의사는 제발 잘 부탁한다며 빌고 또 빌었다. 환자의 죽음이 자기 탓 인양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여러모로 안타까웠다. 천만 다행히도 환자 상태가 절망적이지 않았다. 정성을 들이면 살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즉시 중환자실에 입원시켰고 집중치료를 시작했다. 3일 후 환자는 의식을 되찾았다.

“여기는 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오늘은 그날로부터 사흘이 지났습니다.” 궁금해하는 환자에게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환자는 가족을 보고 싶어 했다. 나는 잠깐의 면회를 허락했다.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은 환자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살아서 다행이라며 한참을 울었다. 조금 진정이 되자 이제 억울함이 밀려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느낌이 싸~ 하더라니까. 내가 분명 그 주사 놓지 말라고 했어. 근데 내 말을 무시하고 기어이 주사를 놓더라고.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이상했어.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수술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해져 오더라고. 이놈들이 뭔가 사고를 치고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그는 가족과 그 병원에서 있던 일을 복기해냈다. 그도, 가족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어처구니없는 개죽음을 당할 뻔했다. 쳐죽일 놈이 따로 없다.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거 같았다. 그는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비장한 목소리로 내게 통보하듯 얘기를 꺼냈다.

가족들은 당장 그 병원을 찾아 살인마라며 의사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오해를 풀기 쉽지 않아 보였다(기사내용과 무관한 사진). [중앙포토]

가족들은 당장 그 병원을 찾아 살인마라며 의사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오해를 풀기 쉽지 않아 보였다(기사내용과 무관한 사진). [중앙포토]

“거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고 죽이는 병원이에요.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요.” 나는 그날 환자를 데리고 왔던 의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창백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게 의아했다. 굳이 저렇게 저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이들은 당장 그 병원을 찾아가 살인마라며 의사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해를 풀기 쉽지 않아 보였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회복한 지 얼마 안 되셨어요. 흥분하면 몸에 안 좋아요. 일단 진정하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면 죽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으시죠?”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근데 그거 미신이에요. 극동 아시아에, 한국에만 있는 미신이에요. 선풍기 틀어둔다고 사람이 숨을 못 쉰다거나 저체온에 빠진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죽을 리도 없죠.” “그럼 죽었다는 사람들은 뭐죠. 뉴스에도 나왔다던데.”

“물론 선풍기 앞에서 죽은 사람은 있죠. 급사의 가장 많은 원인이 심장마비인데, 이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거든요. 하필이면 선풍기를 쐬고 자던 도중에도 심장마비가 생길 수 있단 얘기예요. 근데 거실에서 TV를 보다가도 생길 수 있고, 마당에서 줄넘기하다가도 생길 수가 있어요. 그렇다고 TV나 줄넘기가 범인으로 의심받는 경우는 없죠. 그런데 유독 선풍기만 항상 살인범으로 몰리지요. 그런 면에서 선풍기는 굉장히 억울하지 않을까요.” “그런 얘길 왜 하시는 거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심장마비로 인한 급사

환자는 심근경색이 있었다. 언제 심장이 멎을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에 운 좋게도 수술을 기다리던 침대에서 심근경색이 온 것이었다. 최승식 기자

환자는 심근경색이 있었다. 언제 심장이 멎을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에 운 좋게도 수술을 기다리던 침대에서 심근경색이 온 것이었다. 최승식 기자

“환자분은 심장 혈관이 막히는 바람에 심장이 멎었어요. 심근경색이란 병이에요. 저희가 제일 먼저 한 치료는 막힌 심장 혈관을 확인해서 뚫은 일이거든요.” “심근경색이라고요?” “네, 환자분은 언제 심장이 멎을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로 살았던 거예요. 그날 TV를 보다가 혹은 줄넘기를 하다가 심장이 멎을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하필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던 침대에서 심근경색이 온 거죠. 운 좋게.”

“그 병원에서 무언가 잘못해서 심근경색이 생긴 거 아닌가요?” “심근경색은 그렇게 생기는 병이 아니에요. 치료 실수로 심장 혈관이 막히고 그러진 않아요. 본인이 못 느꼈을 뿐이지 혈관 속에 기름때 같은 게 낀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아무튼 환자분은 운이 좋았어요. 의료진 앞에서 심장이 멎었으니까요. 바로 심폐소생술을 받을 수 있었죠. 심장이 멎으면 처음 몇 분 만에 생사가 갈려요. 환자분은 그때 워낙 심폐소생술이 잘 돼서 지금 저랑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아마 병원이 아닌 집에서 심장이 멎었으면, 십중팔구는 식물인간이 되었을 거예요.”

"같은 의사라고 제 식구 감싸주는 거 아닌가요?” “글쎄요. 믿거나 말거나 자유입니다만. 제가 그 병원 의사라면 굉장히 억울할 거 같아요. 마치 선풍기처럼요.”

그러나 환자 마음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려운 설명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이해하기 편했으니까. ‘걸어서 들어갔다 죽어서 나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그는 며칠 후 걸어서 퇴원했다. 그리곤 제일 먼저 그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돌팔이, 살인마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semi-moon@hanmail.net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