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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밖 북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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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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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 녀자와 어린이 판매 금지. 월경자 수용·숙식제공 금지’.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린성 바이산시가 두만강변에 세워 둔 경고판 문구다. 어른 키 두 배 높이 펜스 위로 끝없이 뻗은 가시철망이 표지판 뒤에 서 있다. 중국어와 한글로 적힌 경고문은 북·중 국경지대에서 수십 년간 벌어지고 있는 탈북자 인권 유린의 증거이자 기록이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최근 펴낸 책 『평양 밖 북조선』에 실린 사진.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린성 바이산시가 두만강변에 세워 둔 경고판 문구다.[사진 강동완]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최근 펴낸 책 『평양 밖 북조선』에 실린 사진.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린성 바이산시가 두만강변에 세워 둔 경고판 문구다.[사진 강동완]

부산하나센터장으로 탈북민 정착을 지원하는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최근 펴낸 책 『평양 밖 북조선』에는 북·중 국경 1500㎞에 사는 주민들의 신산한 삶이 담겼다. 1000장에서 한 장 모자란 999장.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통일을 꿈꾸자는 뜻을 담았단다. 단둥 압록강에서 훈춘 두만강까지. 강 교수는 지난 6~8월 석 달간 중국을 오가며 북·중 경계선에 섰다. 차를 타고 가다 건너편 북한 주민이 보이는 곳이면 내려서 셔터를 눌렀다. 압록강에서 사금 캐는 청년의 노동도, 해 질 녘 강가에 앉아 동생의 머리를 땋아주는 소녀의 마음도, 학교와 직장으로 가기 전 ‘세대주 작업’에 동원된 주민들의 피곤한 얼굴도 900㎜ 망원렌즈 속으로 들어왔다.

어른 키 두 배 높이 펜스 위로 끝없이 뻗은 가시철망에 경고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설치돼있다.[사진 강동완]

어른 키 두 배 높이 펜스 위로 끝없이 뻗은 가시철망에 경고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설치돼있다.[사진 강동완]

렌즈에 잡힌 북녘의 주민들을 압도하는 것은 건물마다 붙어 있는 구호다.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의 참된 아들딸이 되자’ ‘주체 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 정상회담 후 사라졌다는 반미구호도 그대로다. ‘철천지원수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

이른바 ‘화해와 평화의 시대’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으로 북한이 변했다고들 한다. 지난여름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 도서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소개했다. 저자인 전 한겨레신문 사진기자 진천규씨는 여러 차례 평양을 오가며 평양의 변화상을 소개하고 있다. 수십 년 타성에 젖은 눈으로 북한을 봐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는 인사들이 추천하는 책이다.

연장선상의 또 하나의 기류. 그동안 우리 사회 일부가 북한을 ‘악마화’해 한반도 문제가 꼬였다는 논리다. 전·현직 장관도, 정부 입장에 동조하는 일부 탈북자도, ‘종북 콘서트’로 수년 전 추방당한 재미교포 신은미씨도 ‘북한 악마화 폐해’를 공론화하고 있다. 일종의 프레임이다.

“북한엔 공민증 외에 평양시민증이 있다. 평양은 다른 곳과 같지 않다. 수차례 정상회담에도 김정은이 독재자란 사실, 주민들은 거대한 감옥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경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사실을 얘기하는 것을 악마화라고 한다면, 악마를 미화하는 것을 무엇이라 얘기해야 하나.” 강동완 교수의 말이다.

김수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