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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대한제국 직전 ‘헬조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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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호 35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올해 문화계 화두 중 하나는 대한제국일 것이다. 관련 유적이 속속 정비되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대중의 관심을 드높였고,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대한제국의 미술’전도 시작했다. 이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식민지 이전부터 자발적인 근대화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걸 밝혀내고 연구하는 일은 매우 의미 깊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도들이 왜 한계에 부딪혔는지 냉정하게 살펴보는 일도 중요하다. 근대국가 건설 시도가 너무 늦게 시작됐고 조선 구(舊)체제의 문제가 너무 심각했다. 그에 관련, 서양인이 대한제국 선포 3년 전 직접 본 ‘헬조선’ 풍경을 참고할 만하다. 오스트리아 여행작가 헤세-바르텍이 쓴 『조선, 1894년 여름』의 일부를 발췌해본다.

“내가 인도나 중국, 일본을 여행하다가 어느 도시에 도착하면 이방인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번개처럼 퍼졌고, 내 집 앞에는 기이한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이 온갖 귀중품을 펼쳐놓았다. 서울에서는 오히려 상인들을 불러달라고 부탁해야 했는데, 막상 상인들이 내놓은 것은 상자와 모자, 담배 파이프, 종이로 된 물품이 전부였다.”

“만약 그들이 생계유지비보다 더 많이 번다면 관리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이 관리들은 조선의 몰락과 이곳에 만연한 비참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관리들의 탐욕은 이윤 획득과 소유에 대한 모든 욕구와 노동 의지, 그리고 모든 산업을 질식시켰다.”

“조선인은 한때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어 이웃 나라의 국민들보다 훨씬 앞서 있었는데, (중략) 12세기에 벌써 서적 인쇄술을 알고 있었다. 이는 유럽의 인쇄술 발명보다 100년이나 앞선다! (중략) 하지만 일본인들이 새로 습득한 기반 위에서 무언가를 더 만들어 마침내 많은 영역에서 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오늘날 유명해진 반면, 조선인들은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고, 관리들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무능력한 정부 탓에 그나마 존재하던 산업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이런 글을 읽을수록, ‘조선 구체제가 일제라는 외세 대신 내부의 시민혁명으로 전복될 수 있었더라면’이라는 탄식이 인다. 그랬다면 조선에 대해서 민족주의 향수에 넘치지 않는 좀 더 냉정한 역사가 기술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 한국의 향방에도 도움을 주었으리라. 지금 진행 중인 ‘대한제국 돌아보기’는 균형 잡힌 고찰이 되기를.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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