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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능의 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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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느라 마음을 졸이는 건 수험생과 학부모만이 아니다. 시험 관리·감독을 맡은 교육부와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못지않다. ‘오류’와 ‘사고’의 망령에 늘 시달려서다. 어제 치러진 2019학년도 수능에서도 출제 오류 탓에 정오표(正誤表)를 나눠주는 일이 발생했다. 1교시 국어영역에서다. 오·탈자 수준의 오류인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게다.

수능은 1993년 도입 이래 26년째다. 그간 벌어진 출제 오류와 시험장 사고의 아찔한 기억이 숱하다. 대형 출제 오류로 첫 ‘복수정답’이 나온 건 2004학년도 언어영역에서다. 시인 백석의 ‘고향’과 그리스 신화 ‘미노토르의 미궁’을 제시한 뒤 ‘고향’에 등장하는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미노토르의 미궁’에서 찾는 문항이었다. 평가원이 발표한 정답에 이의가 쏟아지자 결국 복수정답을 인정했다. 이후 2008, 2010, 2014, 2015, 2017학년도에도 복수정답이나 전원 정답을 인정한 출제 오류가 잇따랐다.

시험장 사고는 주로 ‘부정행위’다. 2005학년도에 역대급 부정행위가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했다. 미리 짜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집단으로 답을 공유한 이른바 ‘수능폰’ 사건이다. 연루자만 374명이었다. 수험생 314명의 성적이 무효처리 됐다. 이후 수능 시험장에 모든 전자기기의 반입이 금지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시험의 난이도는 신(神)도 모른다”는 입시 업계의 경구가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새삼 곱씹게 한 부끄럽고 안타까운 수능의 기억은 2003학년도 때다. 수능 다음날 각 언론은 ‘평균 10~15점 오를 듯’이라는 대동소이한 수능 난이도 기사를 내보냈다. 입시전문기관들의 분석과 전망을 인용한 관행적인 보도였다. 그러나 다음날 평가원의 표본 채점 결과 오히려 평균 2~3점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결과적으로 집단 오보였다. 한 수험생이 낙담해 자살했다. 자성 분위기 속에 교육부 기자단과 입시기관 평가실장들이 만나 ‘수능 예상 점수 보도 중지’를 합의했다. 수십 년간 지속돼 온 입시 보도 관행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정오표 해프닝으로 다소 어수선했지만 온 나라가 앓는다는 몸살, 수능이 무사히 끝났다. 수험생은 시험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이면에 결과에 대한 두려움도 만만치 않을 터다. 아무쪼록 낙담하지 말 일이다. 지금까지도 역경을 잘 헤쳐오지 않았는가. 긴 인생의 출발점에 이제 막 섰을 뿐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