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유가족은 가족을 자살로 잃은 사람이다. 영어 표현은 ‘suicide survivor’다. 직역하면 ‘자살 생존자’이니 자살을 기도했다가 살아남은 사람으로 잘못 읽히기 십상이다. 그만큼 극심한 충격과 고통으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의미일 터다. 미국 상원의원 해리 레이드도 부친을 자살로 잃었다. 그런 그가 발의해 1999년부터 기리는 게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이다. 자살 유가족을 위로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자는 취지다.
그제 서울 서교빌딩에서 열린 ‘2018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 행사가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 이 행사가 처음 열린 건 2015년이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했다. 이번엔 자살 유가족이 직접 행사를 열었다. 남편을 자살로 잃은 김혜정씨와 그에게 힘이 돼 주려는 친구·동료들이 꾸린 자조(自助) 모임 ‘자살 유가족X따뜻한 친구들’이 주축이다. 자살 유가족에 의한 자살 유가족 돌봄 ‘실험’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 삶에서 스스로 추방한 즐거움과 행복을 포기하지 말고 모든 감정을 동등하게 받아들이세요. 우는 것만이 아니라 웃어도 되고 춤을 춰도 됩니다.” 김씨가 이날 행사에 참석한 자살 유가족 30여 명에게 전한 메시지다. 그래야 삶의 희망을 붙잡을 수 있고, ‘극단’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행사 시작은 ‘함께 식사하기’다. 마음을 여는 행위이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자는 의미다. 가슴속에 묻은 ‘가족의 죽음’과 ‘슬픔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치유와 위로다. 속마음을 담은 메모를 조각보에 매달고 함께 외친다. “나한테 잊어버리라고 하지 마. 그리워, 보고 싶어, 사랑해.”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김씨는 “이런 언어가 없어 가족을 잃었던 거다. 이걸 되찾아야 좋은 기억을 회복하고 극복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김씨와 ‘자살 유가족X따뜻한 친구들’이 유가족 돌봄을 체계적으로 시작한 건 석 달 전부터다. 김씨 집 다락방에서 유가족 자조 서클 모임을 하고 ‘애도 프로세스’를 통해 슬픔을 이겨내도록 돕는다. 아픔을 극복한 자살 유가족이 고통을 겪는 유가족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한 해 1만3000여 명이 자살하고 최소 8만 명 이상의 유가족이 생긴다. 이들의 43.1%가 자살을 고민할 정도로 삶을 힘겨워한다. 제2, 제3의 ‘자살 유가족X따뜻한 친구들’이 확산돼야 하는 이유다. 자살 유가족은 불쌍한 타인이 아니라 보듬어야 할 우리들 중 하나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