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한 숟가락 흙 속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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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 숟가락 흙 속에' - 정현종(1939~ )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



첫 문장은 새로운 정보이고 지식이다. 생물학 교사였던 시의 화자(話者)는 3~4행에서 종교인으로 변신한다. 지식이 깨달음으로 격상한다. 하지만 흙 한 술 속의 우주는 아직 '거기'에 있다. 연이 바뀌는 순간, 놀라운 화학이 일어난다. 시의 화자가 시인으로 바뀌면서 '거기', 즉 우주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온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인식을 몸소 경험하는 것이 더없이 절실한 때다. 시의 여운은 다음과 같은 경구를 불러온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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