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팬티 성폭행'은 무죄···여성계 발칵 뒤집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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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재판 결과에 항의하며 열린 시위. [사진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유튜브 캡처]

14일 재판 결과에 항의하며 열린 시위. [사진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유튜브 캡처]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던 20대 남성이 소녀가 ‘끈 팬티’를 입고 있던 것이 합의된 성관계의 증거라고 제시한 후 무죄 판결을 받아 여성계가 발칵 뒤집혔다.

영국 BBC·인디펜던트 등은 해당 논란을 둘러싸고 온·오프라인상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일랜드의 코크주에서 벌어진 이 논란은 골목길에서 A양(17)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B(27)의 변호인이 지난 6일 최종 변론에서 피해자의 속옷을 꺼내 들며 시작됐다.

이 변호인은 남성 8명과 여성 4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을 향해 원고가 피고에 매력을 느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그가 어떤 차림이었는지를 봐야 한다. 그는 앞면이 레이스로 된 끈 팬티를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90분간의 논의 끝에 배심원단은 피고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후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재판 과정과 결과가 알려지자 세계 곳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끈 팬티가 어떻게 ‘합의된 성관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속옷을 올린 트위터. [사진 트위터 캡처]

속옷을 올린 트위터. [사진 트위터 캡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분노한 세계 곳곳의 여성들이 끈 팬티와 같은 ‘야한 속옷’을 입고 있었다고 성관계에 합의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에서 ‘#ThisIsNotConsent’(‘이것은동의가아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속옷 사진을 올리며 항의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의회에서 속옷 꺼내든 아일랜드 의원. [사진 트위터 캡처]

의회에서 속옷 꺼내든 아일랜드 의원. [사진 트위터 캡처]

캠페인은 의회에도 불이 붙었다. 루스 코핀저 아일랜드 하원의원은 지난 13일 의회에서 재판에 등장했던 것과 비슷한 파란 속옷을 들고나와 “여러분들이 여기서 이런 속옷을 보는 것은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며 “성폭행 피해자가 재판에서 자신의 속옷을 봤을 때는 어땠을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

14일 재판 결과에 항의하며 열린 시위. [사진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유튜브 캡처]

14일 재판 결과에 항의하며 열린 시위. [사진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유튜브 캡처]

14일에는 재판 결과에 분노한 여성 200여명이 해당 재판이 벌어졌던 코크 법원 앞으로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다양한 끈 팬티를 법원 계단에 걸어놓으며 피해 여성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재판 관행에 항의했다. 이날 수도 더블린 등 주요 도시에서는 “속옷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구호와 함께 속옷으로 성관계의 동의 의사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시위가 열렸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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