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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성, 그 남사스러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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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정치팀 기자

김경희 정치팀 기자

얼마 전 요즘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인 ‘레드컨테이너’에 가봤다. 성인용품점이지만 이름이 세련되고 인테리어가 깔끔하다보니 젊은이들 사이에선 큰 거부감이 없는 듯하다. 포털사이트에서 지도 검색을 하려면 성인인증을 해야만 했다. 막상 찾아가보니 자주 지나던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이유는 한 페이스북 광고 때문이다. 한 여성 모델이 “콘돔은 그냥 사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아차 싶었다. 나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내 손으로 콘돔을 사본 적이 없었다.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면서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이 분야에 무심했고 무지하구나.

사실 성인용품점이 투명한 창문들로 무장한 채 번화가 한복판에 들어선 것 자체가 최근의 일이다. 한국사회도 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는 듯 하지만 양지로 나온 성인용품점들이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청소년보호법상 19세 미만 청소년은 성인용품점에 출입할 수 없지만 문 밖에 진열된 상품들부터가 외설적이고 ‘쓸데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가 성교육에 소극적인 편인 건 익히 알려진 얘기다. 유네스코가 2009년 발간한 ‘국제 성교육 지침서’는 5세부터 성교육을 하라고 한다. 스웨덴은 만 4세부터 성교육을 의무화했고, 15세부터 피임을 가르친다. 일본 마트에 가면 화장품이나 장난감 코너 옆에 다양한 콘돔들이 진열돼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청소년을 위한 콘돔 공급 업체 이브콘돔의 설문조사 결과 132명 중 31.8%(42명)가 “콘돔을 살 때 주변 시선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콘돔을 단순한 쾌락의 도구로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청소년들은 피임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질병관리본부의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 통계(2016년)에 따르면 성관계를 경험한 청소년들은 평균 13.1세에 첫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피임 실천율은 절반 수준인 51.9%에 그쳤다.

물론 청소년기에 왜곡된 성 인식을 갖지 않도록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잣대라면 성인용품점 말고도 제대로 단속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인터넷에는 여성의 큰 가슴이나 엉덩이를 볼썽사납도록 부각한 발기부전 치료제 광고 등이 즐비하고, 학생들의 교과서 반열에 오른 유튜브에도 온갖 선정적인 콘텐트가 돌아다닌다.

무조건 모르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성교육이다. 섹스, 콘돔 등의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남사스러워하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더 늦기전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성교육 방법부터 배워야겠다.

김경희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