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국장 사절 맞아 조문외교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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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4일의「히로히토」일왕 장례식을 앞두고「다케시타」일본 수상이『2차 대전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침략성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으로 중국·한국에서 파문이 일고 있는 것과 아랑곳없이 엄숙한 장례가 화려한 조문외교로 각광을 받고 있다.「히로히토」일왕의 국장에 참석하는 세계 1백63개국 대표들이 동경을 무대로 벌이는 이른바「조문 외교」가 22일 오전 핀란드「코이비스트」대통령과「다케시타」(죽하 등) 수상의 회담을 시작으로 막이 열렸다.
「다케시타」수상은 22일 오후에도「루키야노프」소련 최고 회의 간부회 제1부의장을 만난데 이어 23일「부시」미 대통령, 25일「미테랑」프랑스 대통령 등 세계 지도자들을 비롯, 4일간에 걸쳐 54명의 원수급 사절과 회담하기로 일정을 짜놓았다.
한편「우노」(우야종우) 외상도 약 1백개국의 수상, 외상들과 개별회담을 가질 예정이어서 이들 사이의 조문외교에 오를 이슈는 전세계의 웬만한 문제는 모두 거론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이「경제 대국」으로서 명실상부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책임분담의 요구가 있어 온데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일본의 침략성을 부인하는「다케시타」의 국회발언 파문까지 겹쳐 이곳 외교가의 촉각은 엄숙한 장례식준비에 못지 않게 분주하다.
EC등 27개 외국기관을 포함한 조문 대표 사절 중 1백7개국 대표사절의 내용은 일 원수급 54명, 왕족 13명, 부통령급 23명, 수상급 12명, 각료급 49명 등으로 되어있다.
이들 나라들끼리의 연쇄 외교회담도 일본의 영접회담에 못지 않게 주목을 끌고있는데 특히 23일 인도네시아「수하르토」대통령과「첸치천」(전기침) 중국 외상과의 회당은 67년 국교단절 이후 처음 열리는 것으로 앞으로의 국교 정상화의 첫 단계로 기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참가사절 중 가장 주목을 끄는 인물은「부시」미 대통령. 20분씩의 회담시간을 배정받은 다른 원수급과 달리 1시간 정도「다케시타」수상과 회담하게 되는 그는 중국의 개방정책, 남북한 대화 등 아시아정세에 관해 집중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미 대통령은 23일 도착 즉시「미테랑」프랑스 대통령과도 회담을 갖고 올 7월 파리교외 데광스에서 열리는 7개국 경제 정상회담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알려져 이번 회담은 하나의 정지 작업적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
동경의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 조문 외교의 또 하나의 초점을 중동 문제 해결의 돌파구 마련 가능성에 두고 있다.
그것은「부시」미 대통령 뿐 아니라 중동문제 해결의 당사국들인 이집트의「무바라크」대통령, 요르단의「후세인」국왕, 이스라엘의「헤르초크」대통령 등이 모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회담으로 이스라엘 점영 하의 요르단 강서안,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의 장래, 분쟁해결에 어떤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
「다케시타」수상은 한국 안에서의 조문반대 데모에도 불구,「히로히토」일왕 장례식에 참가할 강영훈 총리와도 25일 오전 만나게 되자 강 총리의 방일은 단순한 조문사절 이상으로 보고있어 일본은 이번 기회에 강 총리가 중·소·동구 등 공산권과 적극적으로 접촉하여 노태우 대통령의「북방 외교」를 뒷받침하는 모종의 채널 만들기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번 조문사절 중 이채를 떠는 인물은「부토」 파키스탄 수상과「아키노」필리핀 대통령 등 2명의 여성거물들.
국내정치에서 민주화의 거센 바람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 이들의 상면을 통해「다케시타」수상은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한 필리핀과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책을 협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피해국인 대부분의 아시아 인접국들은 국내의 따가운 반일여론을 의식, 조문사절의 파견에도 당초의 규모를 축소하는 등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다케시타」와「우노」가 각기 호스트로 나선「히로히토」일왕의 장례식은 이처럼 세계 각국의 이해 관계가 조정되는 외교 무모로 부각시키려고 조문 외교를 활용하고 있으나 최근「다케시타」 발언에 대해 중국이 끈질기게 비판하고 있듯이「히로히토」시대의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성이 쉽사리 역사의 뒷전으로 잊혀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동경=방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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