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나라당의 과제 '책임 있는 야당' 모습 보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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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번 선거의 압승으로 한나라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고 내년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정부.여당을 심판하기 위해 국민이 한나라당에 몰아준 압도적 지지에 대해 어떻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지를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고민해야 한다.

사실 한나라당이 호남.제주를 제외한 전국의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광역의회.기초의회를 싹쓸이한 이번 선거 결과는 지방자치의 미래를 위해서는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방정부와 의회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독주할 경우 지방자치가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권력을 장악한 한나라당이 핵심 지지층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바람과 요구를 먼저 헤아려 지방자치가 뿌리 내리도록 통합의 정치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또 한나라당은 공천 비리와 성추행 파문 등으로 표출되었던 부패와 수구정당의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당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공천 비리나 성추행 사건 등 선거 이전에 터졌던 문제들에 대해 한나라당이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를 바란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은 무능하고 오만한 열린우리당보다 부패하지만 유능한 한나라당을 선택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국민은 한나라당을 여전히 부패하고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는 수구정당으로 보고 있고, 한나라당의 유능함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나아가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영남 지역당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이를 위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길 기대한다. 그동안 열린우리당이 전국정당을 목표로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호남 외의 모든 지역에서 압승해 실질적인 전국정당화를 달성하였다. 한나라당이 이러한 전국적 지지기반을 갖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화합의 큰 정치를 펼쳐 나가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로 주어진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갖고 산적한 국가 현안을 해결하는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이번 선거 참패로 현 정부는 심각한 레임덕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여당도 내홍(內訌)과 분열로 인해 국정 운영의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1년 반의 남은 임기 동안 현 정부가 국정운영을 제대로 못하고 표류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우리가 직면한 국정과제들이 만만치 않다. 환율과 유가 인상 등으로 다시 침체 조짐을 보이는 경제상황이나 고착상태에 있는 6자회담과 북핵문제 처리, 치열한 저항이 예상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중요한 국정 현안 처리에서 한나라당이 현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자세를 보이기를 기대한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