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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보육엔 인색, 청년엔 1300억 뿌리는 이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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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아이들은 표가 안되니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건가요. 남경필 전 지사 사업이라고 공공 보육을 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요.”

경기 용인시에 사는 워킹맘 A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A씨 아이가 다니는 ‘따복어린이집’은 내년 2월 사라진다. 따복 어린이집은 경기도가 2016년 시작한 공공 보육 시범사업이다. 경기도가 용인·하남·성남 등에 기존 민간 어린이집 3곳을 임차해 도 산하기관인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에 운영을 맡겨왔다. 투명한 회계관리와 원장의 회계업무 역량 강화를 위해 전문가가 회계 컨설팅을 하고 상시 모니터링도 해왔다.

학부모에게 교실을 개방하고, 유기농 식자재로 급식을 제공했다. A씨는 “도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믿고 아이를 보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회계 비리 기사가 쏟아져도 걱정이 없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따복어린이집 모델을 도 전체에 확산시킬 계획이었다. 학부모·보육교사의 만족도가 높았다. 학부모 99.3%는 “주변에 추천하고 싶다”고 답했다. 보육교사들은 “경기도형 어린이집 교사로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는다”고 답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5일 수원시 경기도청 에서 2019년 본예산 편성안을 발표하고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5일 수원시 경기도청 에서 2019년 본예산 편성안을 발표하고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경기도는 지난달 따복어린이집 사업 종료 결정을 내렸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대비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도청 보육정책과 관계자는 “3곳에 2년간 20억원이 들어갔는데 수혜자는 어린이 몇 명에 불과해서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3곳 어린이집은 기존 소유주에게 돌려줄 가능성이 커졌다. 0~5세 어린이 169명은 당장 내년 3월 갈 곳을 찾아봐야 한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사회서비스를 ‘가성비’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공공성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5일 경기도의 24세 청년 17만5000여명에게 연간 100만원의 ‘청년배당’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청년들에게 공정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게 돕는다는 취지다. 연간 1300억원이 들어간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청년배당을 도입했지만, 그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성남시가 뿌린 지역 화폐가 온라인상에서 헐값에 중고 거래되기도 했다. 무상 교복, 무상 산후조리원 등 ‘가성비’가 검증되지 않은 선심성 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 사회적인 합의가 충분히 이뤄진 공공 보육 모델은 폐지하는 게 앞뒤가 안 맞다. 갑작스러운 방침 변경은 전임자 흔적 지우기, 투표권 없는 아이들 경시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 지사가 전임자의 정책이라도 의미 있는 것이어서 이어가기로 결정한다면 그게 ‘큰 정치’의 꿈에 더 어울릴 것이다.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