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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빠진 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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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34면

김종윤 논설위원

김종윤 논설위원

한국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를 복구하려면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민은 그의 예상을 뒤집었다. ‘성장’을 이루었다. 지금 경제가 활력을 잃어 주춤거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성장이다. 경제는 두 발 자전거처럼 움직인다. 성장이라는 페달을 계속 밟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경제는 쓰러진다.

‘함께 잘 살자’ 가치를 실현하려면 #노동개혁 등 힘든 결단 나왔어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성장’과 ‘함께’라는 말을 똑같이 25차례 강조했다. 성장의 목표는 ‘우리는 함께 잘 살아야 합니다’라는 말에 담겨 있다.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라는 말의 울림은 컸다. 더불어 잘 살자는 건 인류의 공통된 가치다.

다음 질문이 나올 차례다. 그럼 어떻게? 문 대통령은 성장 전략으로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라는 정책 기조를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의 노력으로 우리는 ‘잘 살자’는 꿈을 어느 정도 이뤘습니다. 그러나 ‘함께’라는 꿈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였다.

요즘 ‘성장’이란 단어는 소화불량 상태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은 물론이고 녹색 성장, 창조 성장(경제) 등 꾸밈말의 성찬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앞으론 아름다운 성장, 부드러운 성장, 강한 성장 등 온갖 성장이 나올지 모른다. 어떤 포장을 하든 중요한 건 성장 자체다. 성장이 안 되는데 단어를 꾸미는 형용사가 무슨 소용이 있나.

이미 한국 경제는 조로화 경향이 뚜렷하다. 노동이나 자본의 투입으로 성장을 이끌 단계는 지났다. 핵심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 올릴 수 있느냐이다. 생산성은 창의적 아이디어, 공정한 경쟁, 위험 도전을 수용하는 제도, 과감한 혁신이 어우러져야 치솟을 수 있다. 현실은 어둡다. 거대 귀족 노조는 기득권을 놓지 않는다. 이들의 철밥통은 더 단단해진다. 청년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자영업자의 비명은 처절하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납품 단가 후려치기나 아이디어 탈취도 여전하다. 각종 규제는 지뢰처럼 도처에 널려 있다. 이렇게 도전의 길이 봉쇄당한 조건에서 생산성을 끌어 올릴 엔진을 달굴 수 있을까.

최저임금 급격 인상이나 일자리 나누기, 정규직 전환 등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정책은 정부 주도에 그친다. 임시방편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민간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강제할 방법도 없다. 정부 주도의 압박이 지속 가능할지 묻고 싶다. 소득주도라는 한 방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경제의 난제를 풀지 못한다. 말로는 혁신 성장도 외치지만 소득주도 성장을 감싸는 그럴듯한 포장지 수준에 그친다. 자본주의 경제의 역동성을 역설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믿지 않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싼 비용으로 건물을 짓겠다는 건설업자와 한 방에 해법을 제시하는 경제학자.”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정답이다. 열매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려 해도 먼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일단 성장이라는 저수지를 채우는 게 우선이다. 저수지가 차야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물을 내려보낼 수 있다. 그 물이 흘러 통합으로 가는 뱃길도 열 수 있다. 첫걸음은 ‘과거의 적폐’를 깨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 개혁, 규제 완화, 구조 조정 등 뼈를 깎는 개혁이 이루어져야 경제에 새 피가 돈다. 문 대통령의 시정 연설 마지막 대목은 ‘우리는 함께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있습니다’였다. 한 마디 빠뜨렸다. ‘그 가치를 위해 노동 개혁, 구조 개혁, 혁신에 매진하겠습니다’가 이어져야 했다.

김종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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