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온가족 「건강제일주의」로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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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경화씨(34·서울 가락동)가정에는 3년전부터 계속해 오는 연례행사가 하나 있다. 맞벌이 부부인 이들은 두 사람의 겨울보너스를 안받는 셈치고 매해 가을이면 시부모·친정부모, 그리고 아들·김씨 내외 등 7사람의 보약을 지어먹는다. 시부모께는 개소주를, 친정부모와 김씨 내외는 각각 한약1제씩을, 아들에게는 녹용2첩을 달여준다.
『두 사람의 보너스를 합치면 4백만원 가까이되죠. 특별히 아픈데는 없지만 칠십을 바라보는 부모님이나 가족 모두의 건강을 미리미리 챙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집 재산」보다는 「건강재산」을 늘려가기로 했습니다.』 김씨의 말이다.
이용호씨(42·서울 일원동)부부는 상대방의 생일날 K병원에서 정기건강진단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생일선물을 대신하고 있다.
이씨는 『결혼기념일에 부부가 함께 건강진단을 받는 이들도 많이 있더라』고 들려주고 『건강을 「보증」받는데 10여만원의 돈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돈 버리는 일」로 치부했을만한 일들이 「가장 가치있는 일」로 뒤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건강제일주의는 식탁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던 「흰쌀밥」은 거뭇거뭇한 현미에 차츰 밀려나고 있으며, 수도물에 정수기를 설치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생수를 사먹는 가정도 급속히 늘어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배추·무우·콩나물·시금치 같은 채소류도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것을 더 선호하며 계란도 방목한 닭이 생산해낸 유정란이라야 식탁에서도 대접을 받게됐다.
그런가하면 무공해재배기·참기름제조기까지 등장, 각 가정에서 직접 청정채소를 길러먹거나 참기름을 깔수 있게까지 됐다.
가족 건강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일반화돼 가고있는가 하는 것은 관련업계의 폭발적인 증가와 신장률에서 잘 알수있다.
81년 유기농법에 의한 농작물 재배로 이른바 「저공해 식품」의 기수가 됐던 풀무원식품의 경우 최근 한해 매출액이 5천만원에 달하고 있는데 매년 50%의 신장세를 계속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정수기제조업체는 무려 2백여곳에 달하고 있으며 정수기에서 한걸음 나아간 이온수기 제조업체도 5곳이나 된다.
1년전 청정재배 청과·야채코너를 마련한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요즘 월매출액만도 3백만∼4백만원에 달하고 있으며 가정에서 간편하게 콩나물·숙주나물을 기르게끔 고안된 이른바 무공해재배기도 자동·수동을 합쳐 월평균 70여대가 말리고 있다.
「가족건강 제일주의」는 병원·식탁에만 머무르고 있지 않다. 건강관련서적도 불티나고 강의마다 대성황을 이룬다. 일례로 자연식동우회 기준성씨가 지난 10년동안 발표한 17종의 자연식 관련서적만도 지금까지 35만부가 팔려나갔다. 기씨는 『11년전 회를 발족했을 때만 해도 관심을 갖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근래들어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1달에 한번하던 자연식강좌를 2년전부터 주1회로 바꿀 정도로 참석자가 늘어났다』면서 『그간 이 강좌를 거쳐간 이들만도 7만여명은 될 것』이라고 들려줬다.
알뜰 가계부 평가에서도 식생활비와 보건위생비의 절약은 비합리적인 가계관리로 지탄받는 시대-이것이 경제생활 향상이 그려낸 또 한장의 새 가정풍속도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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