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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세종 신청사 공모전 짜고친 심사" 심사위원장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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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3714억 원 규모의 세종시 신청사 국제설계공모전의 당선작이 발표된 가운데, 공모전을 이끈 심사위원장이 “당선작을 정해 놓고 짜고 친 심사였다”며 결과에 불복하고,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심사위원장은 지난 4월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초대 총괄 건축가로 임명된, 건축가 김인철(아르키움 대표)씨다. 그는 31일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에서 당선작 발표 직후에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후대에 부끄러울, 말도 안 되는 일이 심사장에서 벌어졌다”며 “29일 열린 심사장에서 이미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며 박차고 나온 상태고, 총괄 건축가직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김인철 건축가 결과 불복하며 심사위원장 사퇴 #심사 앞두고 행안부서 “타워형 고층 건물 선호”언질 #결선 오르자 공무원들 사무형 14층짜리에 몰아주기 #“설계비만 140억짜리…문제 제기 기록 남기고파”

건축가 김인철          중앙포토

건축가 김인철 중앙포토

김 대표는 행정중심복합도시에 건립되는 공공건축물의 가치 및 품격 향상을 이끌어가는 임무를 맡은 1호 총괄 건축가다. 새로운 민주주의 도시 모델로 만들겠다던 세종시가 처음 계획과 달리 늘 보던 신도시의 모습과 다를 바 없게 변질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요즘, 김 대표의 행보가 주목되던 차였다. 그는 “세종시를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더 멀리 바라보며 계획했던 것들이 있었지만 지금으로써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며 “당선작은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조화를 깨고, 결국 도시의 애초 컨셉트를 무시한 채 실패한 도시로 만드는 안”이라고 일갈했다.

정부세종 신청사 국제설계 공모 당선작. 가운데 우뚞 솟은 건물이 신청사다.   사진 김인철 건축가

정부세종 신청사 국제설계 공모 당선작. 가운데 우뚞 솟은 건물이 신청사다. 사진 김인철 건축가

행복청에 따르면 당선작은 희림종합건축사 사무소 컨소시엄이 낸 ‘세종 시티 코어(Sejong City Core)’다. 현 청사의 중심부에 들어설 건물은 연면적 13만4000㎡(약 4만606평)로, 14층 규모다. 지상 8층 규모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기존 청사 사이에서 우뚝 솟아 오른 형태다. “정부세종청사의 새로운 구심점 구축을 통해 전체 행정타운 완성을 표현했다”는 게 행복청의 설명이다. 하지만 심사위원장의 의견은 달랐다.

심사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규모가 4만 평에 달하고, 설계비만 140억 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공모전을 1차, 2차 나눠서 진행하기로 7명의 심사위원과 합의해서 진행했다. 1차 심사 결과 5팀으로 압축됐고, 두 달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달 29일 2차 심사를 열었다. 당선작처럼 세종시의 도시계획과 어울리지 않는 타워형 건물은 애초부터 배제하고,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저층형 건물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심사날 아침부터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행정안전부의 공무원이 ‘행안부에서 응모작을 자체 회람한 결과 타워형 건물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를 흘리더라. 행안부에서 이미 안을 결정했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리던 차였다. 공개적으로 ‘규정 위반’이라고 경고를 했고, 심사를 진행했다. 5개의 작품을 놓고서, 또다시 1, 2차로 나눠 투표했다. 1차 투표 결과 1등부터 5등까지 득표수가 명확하게 줄 세워졌다. 잘됐구나 싶었다. 타워형인 당선작이 2등이었고, 2등으로 떨어진 저층형 안이 1등이었다. 이 둘을 놓고 결선투표를 하는데 갑자기 판도가 뒤집혔다. 행안부, 행복청 측 인사들이 모두 2등을 1등으로 밀었다.”
당선작 이미지.                                   사진 김인철 건축가 제공

당선작 이미지. 사진 김인철 건축가 제공

어떤 생각이 들던가.
“내가 당했구나 싶었다. 작전은 쭉 전개되고 있었고, 허수아비처럼 헛발길질을 했구나 싶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심사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나와 함께 저층형 안을 뽑았던 김준성 건축가도 함께 일어나 서울로 돌아왔다. 다음날 행복청 처장이랑 담당 국장 등이 서울 사무실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는 취지로 나를 설득하더라. 그래서 나는 못한다, 총괄 건축가 직도 내려놓겠다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2등작의 모습. 기존 세종시 마스터 플랜의 철학을 이으면서 부족한 기능을 보완하겠다는 것이 컨셉트다. 가운데 사다리꼴로 비스듬하게 올라가는 건물이 신청사다.           사진 김인철 건축가

2등작의 모습. 기존 세종시 마스터 플랜의 철학을 이으면서 부족한 기능을 보완하겠다는 것이 컨셉트다. 가운데 사다리꼴로 비스듬하게 올라가는 건물이 신청사다. 사진 김인철 건축가

뭐가 문젠가.  
“행복청 공무원이 그러더라. 모 심사위원은 행안부 추천으로 들어와서 행안부 의견을 대변할 수밖에 없었고, 모 심사위원은 세종시 편이라 타워형을 꼽았을 거라더라. 시장이 타워형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는 국민이 낸 세금이자, 국가 예산을 집행해 짓는 공공건축이 단체장이나 기획하는 공무원의 기호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전문가인 건축가는 조언자 역할에 그치고 만다. 공모전을 할 때 담당 부처에서 선호하는 인사와 공무원이 심사위원으로 들어와 당락을 좌지우지 하는 게 현실이다. 당장 필요에 의해 짓는 건물이지만, 우리는 그 건물을 한 때만 쓰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 두고두고 남을 현대 유적이나 다름없는 건물을 한 개인의 기호로 결정해서 되겠나. 우리 후손이 앞으로 이 건축을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참담하다.”
당선작의 문제는 뭔가.  
“땅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세종시 정부청사의 가장 중요한 컨셉트는 평평한 ‘플랫 시티(Flat City)’이자, 연결됐다는 ‘링크시티(Link City)’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다 고층 빌딩을 세운다고? 완전히 세종시 자체를 실패작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게 들어서면 세종시는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된다. 애초의 컨셉트가 일괄되게 유지되지 못하고 훼손되기도 했지만, 현재를 보완하고 완성할 수 있는 안을 뽑아야했다. 그런데 ‘문제 많으니까 더는 이렇게 안 짓고 우리 식으로 지을래’라고 하면 되겠나. 세계 어느 도시계획가가 봐도 웃을 일이다.”
왜 행안부나 세종시는 당선작을 좋다고 하는 건가.  
“가장 익숙한 형태지 않나. 어디서든 봄직한 오피스 빌딩이다. 당선작은 현재 상태에서 실제로 지어지기까지 고민할 게 하나도 없는 안이다. 엔지니어링 아웃소싱하고 끝날 안이다.”
2등작 이미지.                                     사진 김인철 건축가 제공

2등작 이미지. 사진 김인철 건축가 제공

2등 안은 어땠나.
“사실 설계 공모전 전, 신청사의 입지를 정하기 위해 입지선정위원회를 열었는데 현 청사의 한가운데 짓겠다는 안을 반대했었다. 행안부가 랜드마크를 짓겠다며 가운데 땅을 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반대했었는데 한가운데 부지에 지으라는 식으로 설계 지침이 나갔다. 2등 작은 주변을 배려한 저층형인데다가, 중심을 비워낸 안이었다. 고층으로 풀지 않고, 옆으로 비스듬하게 세웠다. 휴먼 스케일에서 보면 훨씬 부담이 덜 가는 안이었다. 트인 공간 만들면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안이고, 내부도 기존 정부 청사 사무실과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공무원 조직에 새로운 물결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공무원들은 반대했지만.”
왜 이 사실을 밝히려 하나.
“문제제기를 했다는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다. 후대에 우리 후손에게 변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누군가는 반대를 했다고. 총괄 건축가도 그만두려고 한다. 어떻게 더 할 수 있겠나. 바꿔보고 싶었는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바위에 계란치는 것과 같은 일이다.”
2등작 이미지.                                     사진 김인철 건축가 제공

2등작 이미지. 사진 김인철 건축가 제공

세종시의 초대 총괄건축가로서 꿈도 있었을 텐데.
“내 포부를 처음 밝히니 공무원이 펄쩍 뛰더라. 나는 공공건축이야말로 민간 건축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예산으로 지으나마나 한 건물을 짓는 것은 공무원들의 직무유기다. 이렇게 말했더니 세종시 공무원들은 모르시는 말씀이라며, 예산 초과하면 문책당하고, 하자 생기면 문책당하니 평범하고 무난한 안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잘한 것에 대한 포상보다,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이 더 심한 게 우리 풍토다. 순환보직 때문에 소명 의식을 갖지 못하고 일하는 공무원 조직의 문제도 많다.”
한 해 발주하는 건축 관련 예산은 엄청난데 왜 공공건축이 이 모양일까.
“지금까지 내가 말한 모든 과정 때문이지 않겠나. 실로 엄청난 예산이다. 국가 집행 예산 중 건축 공사비와 토목 공사비를 비교하면 건축이 세 배쯤 된다. 하지만 국토부 공무원 중 토목직이 건축직의 세 배다. 관료 조직에서 건축은 건설이다. 밖에서는 건축은 문화라는 풍토가 점점 확산하고 있지만, 관료 조직으로 들어가면 건축은 건설이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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