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간 사비 털어가며 강제징용 피해자들 도와 온 일본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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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인터넷에서 소송에 대해 비난 댓글이 많다는데, 피해자들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들은 정말로 엄혹하고 긴 시간을 보냈다"  

21년간 강제징용 피해자를 도와 온 일본인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64)의 말이다. 30일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옛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이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나카타씨는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날 일본인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60)와 함께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 곁을 지켰다. 나카타씨는 "2013년 7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일부 승소했을 때 기자회견장에는 여운택, 이춘식 할아버지가 함께 계셨다. 그땐 소송에 참여한 네분 모두 살아 계셨는데 지금은 한 분만 있다. 시간이 정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해결을 위해 힘써야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교토시와 오사카시 공무원이었던 나카타와 우에다는 1997년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처음 소송을 낼 때부터 피해자들과 함께했다. 당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가 일본 공무원이었던 두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인연이 됐다. 이들은 당시 주변의 부정적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움을 자처했다.

이날 이들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이 겪었던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오래도록 한국과 일본이 가까이 지내지 못할 것 같았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돕기로 결심했던 이유를 밝혔다.

재판 과정은 험난했다. 특히 아베 신조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인 피해자를 돕는 일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반일 인사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갈등 해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고 두 사람은 회상했다.

그렇게 21년이 지났다. 교통비, 숙박비 등을 모두 사비로 해결하며 한국과 일본은 30~40차례 오갔고, 드디어 승소 판결을 받았다. 나카타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 외에도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소송처럼 해결되지 않은 문제 또한 있다. 일본 정부가 해결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두 사람 외에도 일본 시민단체 '강제연행기업 책임 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가 일본 현지에서 20년 간 소송을 도왔다. 이날 야노히데키 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이제 신일본제철이 나서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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