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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주도하는 유튜브에 6070 할프리카TV까지 … ‘나만의 일상’ 스타 탄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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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호 02면

[SPECIAL REPORT] 유튜브 열풍

유튜브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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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간지 나는 휠체어 잘 봤어? 나는 뇌쪽을 다쳐서 걷거나 뛰는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뇌성마비 장애인이야.”

장애인 여고생 ‘굴러라 구르님’ #구독자 1년 새 2만8000명 몰려 #11세 간니·7세 닌니 장난감 놀이 #구독자만 55만 명 연예인 뺨쳐 #동영상 제작에 빠진 할머니들 #“처음엔 뭐지 했는데 엄청 재미”

유튜브 화면 속 소녀의 말투는 조곤조곤 당당했다. 만화와 영상 편집을 좋아하고, 대학 입시 스트레스를 받지만 수학여행 갈 땐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평범한 여고생. 그러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일본·제주도 여행기를 올리고 장애인 인권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야. 장애인도 같은 사람으로 숨 쉬고 있어”라고.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의 크리에이터 김지우(17)양의 얘기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이은 기록 도구

휠체어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하는 모습을 올린 ‘굴러라 구르님’ 채널의 김지우 양. [사진 유튜브 캡처]

휠체어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하는 모습을 올린 ‘굴러라 구르님’ 채널의 김지우 양. [사진 유튜브 캡처]

닉네임 구르는 ‘휠체어와 함께 굴러 다닌다’는 의미에서 따왔다. 지난해 유튜브에 올린 첫 소개 영상은 누적 조회수 13만 회를 기록했고, 10명 남짓으로 시작한 구독자는 1년 만에 2만8000여 명이 됐다. 댓글엔 ‘나도 고1인데 지적장애 3급이다’ ‘장애가 있는데 고등학교 가는 게 겁난다’ 등 장애를 가진 또래 청소년들의 공감과 고민들이 달렸다.

지우양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장애인의 대표도 아니고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장애인에게 ‘왜 너는 저렇게 목소리를 내지 않아’라고 하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가로세로 16대 9 비율의 작은 화면은 더 이상 몇몇 크리에이터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자신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브이로그(Vlog·Video와 Blog의 합성어) 열풍이 불면서다. 유튜브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 이어 일상 기록의 도구가 돼 가고 있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시아·태평양 매니징 디렉터는 올해 펴낸 『유튜브 한국 이야기』에서 “한국에서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11주년을 맞이한 지금 한국의 유튜브 커뮤니티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다양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최근 생겨나는 유튜브 채널들은 각각의 사연만큼 개성이 뚜렷하다. 자막 또는 짤방(잘림 방지의 줄임말·움직이는 그림)으로 함축적인 유머를 구사하고, 한 클립당 5분을 넘기지 않는 것은 공통점이다.

지우 양과 같은 ‘Z세대’는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Z세대는 1995~2000년대 후반 출생한 이들로 최초의 ‘디지털 인류(digital native)’다. 미국 심리학자인 진 트웬지는 “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 영상을 보며 자랐기에 영상으로 소통하는 걸 주저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사생활과 개성을 존중 받기 원한다”고 분석했다. 실명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거쳐 간 밀레니엄세대(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출생)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유튜브 채널 ‘간니닌니의 다이어리’의 초등생 유튜버 가흔·리흔 자매와 엄마 고은주(오른쪽)씨가 19일 서울 서교동의 카페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고씨는 ’아이들에게 인생의 기록을 남겨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유튜브 채널 ‘간니닌니의 다이어리’의 초등생 유튜버 가흔·리흔 자매와 엄마 고은주(오른쪽)씨가 19일 서울 서교동의 카페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고씨는 ’아이들에게 인생의 기록을 남겨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가흔(11)이와 리흔(7)이 자매도 2016년 유튜브 ‘간니닌니의 다이어리’ 채널을 시작했다. 두 딸의 육아일기를 동영상으로 남기고 싶어 엄마 고은주(43)씨가 아이들의 커가는 일상을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바퀴 달린 신발 힐리스, 촉감놀이 슬라임 등 첫째 간니(가흔이)가 갖고 노는 장난감들이 대박이 나면서 올해 구독자 55만7000여 명의 파워 유튜버가 됐다. 가흔이는 10대 소녀들 사이에선 연예인이나 다름없다. 지난 19일 서울 서교동의 간니닌니 카페 ‘니블리’에는 가흔이를 보러 오는 또래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렸다. 유튜브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가흔이는 “예전엔 낯을 많이 가렸는데 친구들이 많이 알아봐 주니까 자신감이 생겼다”며 “영상 편집에도 관심이 생겨 ‘간니 채널’을 곧 만든다”고 말했다.

김민지 구글코리아 유튜브 파트너십 매니저는 “최근 유튜브에서 전 세계적으로 공감 요소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자신의 소소한 일상이나 감정을 나누는 크리에이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재신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실시간 시청보다 사용자가 원할 때 저장한 것을 꺼내볼 수 있는 VOD(주문형 비디오) 문화가 퍼지면서 유튜브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글 본사 초대받은 71세 박막례 할머니

경기도 이천 지역 60, 70대는 유튜브 제작에 도전하는 ‘할프리카TV’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경기도 이천 지역 60, 70대는 유튜브 제작에 도전하는 ‘할프리카TV’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23일 경기도 이천문화원의 ‘할프리카TV’ 수료식. 지난 5개월간 유튜브 제작에 도전한 7명의 60, 70대들이 모여 결과물을 시청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BJ 큰언니입니다. 팔프리카, 할프리카TV….”

“내가 한가득 요만한 우럭을 캤어.(바다에서, 우럭 새끼를?) 아니, 요만한 조개.(우렁이를) 아니, 우럭이란 조개가 있어.”

NG 장면이나 동문서답하는 장면이 나오자 웃음이 터졌다. 아프리카TV와 할머니·할아버지의 합성어인 할프리카TV는 노년층과 2030세대 간 소통을 위해 출발한 국고 지원 사업이었다. 20, 30대로 구성된 4명의 젊은 예술가가 영상 기획을 하고 촬영·편집을 맡았다. 이천 지역 6070세대 12명이 지원해 9명이 촬영을 완수했다. 이천 설봉축제를 홍보하는 영상을 만드는 게 주요 임무였다. BJ 꽃님으로 불린 신양우(72)씨는 “아직도 핸드폰으로 영상을 찾아보는 게 어렵지만 유튜브를 계기로 젊은 사람들하고 어울릴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BJ 런치 김점심(64)씨는 “처음엔 ‘이게 뭐 하는 건가’ 마냥 어려웠는데 촬영을 할수록 재밌더라”며 “다같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실버 크리에이터들의 롤 모델은 뷰티 유튜버 박막례(71) 할머니다. ‘막례쓰(th)’가 애칭인 박 할머니는 아이돌 수지 커버 메이크업 등 연예인 패러디로 호응을 얻었다. “염병하네” “뭣헌다고 이걸 한대” 등 할머니의 무심한 듯 속 시원한 말투도 인기 비결이다. 박 할머니는 미국 구글 본사에 초청 받고 수전 보이키치 유튜브 최고경영자(CEO)에게서 영상 편지까지 받았다. 그 역시 20대인 손녀가 촬영하고 편집을 한다.

“소음 없애려 냉장고 코드 뽑고 촬영도”

유튜브에서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콘텐트만 각광 받는 건 아니다. 친환경 레시피를 소개하는 ‘심방골 주부의 행복한 이야기’ 채널은 ASMR(청각·시각을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주는 영상)에 가깝다. 음성은 없다. 캉캉캉 식칼이 나무 도마를 경쾌하게 달려가는 소리, 양파가 가스불 위에서 지글지글 볶아지는 소리와 다양한 색감의 식재료가 5분 남짓한 영상을 가득 채운다. 주부 조성자(61)씨는 충남 부여 심방골에서 양봉·벼농사를 30년 동안 해오다 막내아들의 제안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김치 담그는 법, 밑반찬 만드는 법 등의 레시피가 인기를 얻으며 최근 구독자 13만 명을 돌파했다.

유튜브는 한국 크리에이터들이 세계로 통하는 채널이기도 하다. 유튜브에 따르면 몽환적 음색으로 팝송 커버 노래를 부르는 ‘제이플라(J.Fla)’ 채널의 경우 2017년 기준 해외 시청 비중이 90%에 달한다. K팝 커버 댄스를 올리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는 구독자의 90% 이상이 해외 팬이다. ‘먹방(Mukbang)’이란 고유명사를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 있는 먹방 채널 중 하나인 ‘떵개떵’도 절반이 외국에 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건 그러나 보통 노력을 요하는 일이 아니다. 할프리카TV 청년 기획자 한도영(31)씨는 “우리는 재밌다고 해서 찍었는데 보는 사람들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방송 아이템을 잡는 게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조성자씨는 “일주일에 세 번 촬영하고 아들이 한 번에 3~4시간씩 편집을 한다”며 “주변 소음을 없애려고 냉장고 전기 코드를 뽑고 촬영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수익을 기대하고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투자했다가 차별화된 콘텐츠 부재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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