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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시평

남북철도 연결과 한반도 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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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개성공단의 건설로 한국전쟁시 최단 공격루트였던 개성~문산 축선은 매일 수백 명의 인원.차량.물자가 오가는 건설축선-협력요로로 변화됐다. 군사 요충 개성 역시 남의 기술과 자본, 북의 토지와 노동이 만나는 산업 요충이자 남북협력의 상징이 돼 가고 있다. 개성에 앞서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2005년 29만8247명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다. 금강산을 제외한 남북 왕래 인원은 2005년 8만8341명을 기록, 분단 이후 60년간의 인원(8만5400명)을 상회한다. 경의.동해 축선 철도와 도로연결을 위해 매일 1100명 이상이 방북했고, 출경 인원과 차량은 월평균 3만3540명과 4893대에 달했다. 두 곳은 사실상의 경계 해체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의 변화를 어떻게 선과 면으로 확대시킬 것인가. 점에서 선, 선에서 면으로의 변화에 있어 철도연결은 인력과 물산과 문화가 좀 더 빨리, 좀 더 깊이, 좀 더 적은 비용으로 드나드는 분수령이 된다. 55년의 철도 단절은 남북 단절을 넘어 대륙으로의 통로가 막혀왔음을 의미한다. 대륙과의 단절로 우리는 해양으로 진출해 경제력 세계 10위의 중견국가를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 남북철도 연결은 남북 회통을 넘어 다시 대륙으로 나아가 중국-시베리아-유라시아를 횡단해 세계와 사통팔달하는 꿈의 지름길을 여는 동시에 북한의 동북 4성화를 막고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앞당기는 요체가 된다.

냉전시대 동안 남한과 미국은 불가피하게 강경-강경 대북정책 조합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둘은 온건과 강경 대북정책 사이의 엇물린 조합을 보여주곤 했다. 1998~2000년 북한은 김대중 정부와 클린턴 정부라는 전후 최초의 온건-온건 대북정책 조합을 맞이했으나 이 황금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부시 정부의 등장과 함께 온건-온건 조합은 종료됐다. 북한은 2007~2008년 남한과 미국의 선거가 초래할 대북정책 조합을 깊이 유념, 98~2000년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 탈냉전 초기 91~94년에도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핵무기 개발 전략을 채택한 바 있다. 이후 북핵 문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한반도 외교.안보문제의 중핵을 이뤄왔다. 철도 운행 합의 번복이 암시하는 소탐대실 징후로 인해 2007~2008년을 앞두고 북한의 세 번째 전략적 오판이 있어선 안 된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에 크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러 국내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가 채택했던 대북정책에 대한 대응이 철도문제의 반복일 때 남한의 선택은 민주사회의 특성상 국민의 의사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6월은 남북 철도 운행이 중단된 달인 동시에 6.25와 6.15가 공존하는, 비극과 희망의 기억이 교차하는 달이기도 하다. 철도 연결을 통해 작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그리고 크게는 정상회담과 남한의 대륙과의 사통팔달이 가능해질 경우 남북은 전쟁으로의 회귀불능점(point-of-no-return)을 통과해 비로소 평화로의 회귀불능점을 구축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남한과 미국의 대북정책 조합을 고려, 중대 기로에 직면한 북한이 한반도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현명한 전략을 선택하기를 소망하고 촉구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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