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전문 상담원도 “직접 당해보니 ‘이게 뭐지’ 당황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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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 하는 민주노총 울산본부 여성위원회. [연합뉴스]

23일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 하는 민주노총 울산본부 여성위원회. [연합뉴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그 자리에서 기분 나쁜 것을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내가 직접 희롱을 당하는 순간 ‘이게 뭐지’ 당황하며 제대로 반박을 못 했어요. 집에 와서 상황을 되짚으며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여성긴급전화1336 울산, 성희롱 드러나 #운영 법인 사무국장 수차례 외모 발언 #문제 제기하자 오히려 부당 징계하기도 #민노총 여성위원회 “운영 자격 없다”

여성긴급전화1366 울산센터 노조 지부장 이모씨는 울먹이며 말했다.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는 “시 공무원들조차 여성이 밖에서 일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며 “우리를 전문 상담원이 아닌 한낱 나이 많은 여자로 보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관련 상담을 하는 여성긴급전화1366 울산센터에서 성폭력이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여성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지난 6월 상담원 3명이 낸 진정과 관련해 센터 위탁운영 법인 사무국장이 성희롱한 것으로 결론 냈다고 24일 밝혔다. 울산지청은 해당 법인에 가해자를 징계하고 근무장소를 바꾸는 등 조처를 한 뒤 11월 16일까지 결과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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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긴급전화1366 울산센터는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을 당해 구조·보호·상담이 필요한 여성들을 위해 특수전화1366을 365일 24시간 가동한다. 성희롱 가해자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A법인이 울산시에서 수탁받아 4월 1일부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근무하는 상담원은 15명이다.

여성위원회와 센터에 따르면 사무국장 B씨(50대)는 한 달여에 걸쳐 상담원 개별·집단 면담에서 신체 부위를 거론하는 등 성희롱 발언을 수차례 했다. 또 저녁 시간이나 공휴일에 여러 번 센터로 전화해 10~40분씩 상담원들과 사적 대화를 하려 해 업무를 방해했다. A법인은 B씨의 반여성적 태도에 시정을 요구하는 센터장에게 오히려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리고 올해 말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했다. 여성위원회는 또 B씨가 상담원들에게 후원금 모금을 압박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6월 부당노동행위로 고발당했다고 밝혔다.

1366울산센터 홈페이지

1366울산센터 홈페이지

여성위원회 측은 “여성인권 보호기관의 모든 권한을 가진 법인이 상담원을 상대로 직장 내 성희롱을 했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A법인이 B씨를 즉시 징계하고 1366 울산센터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울산시는 A법인을 특별 관리·감독해 여성인권 보호기관을 수탁할 자격이 있는지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한 피해 상담원은 “이 법인은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기관도 함께 운영한다”며 “그런데도 피해자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울산시는 “올해 안에 1366 울산센터 운영 전반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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