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내달 데뷔 주부밴드 '능수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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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아. 천국 같은 세상이야~. 야호! 나는 살아있네~'.

21일 오전 11시 충남 천안시 중앙시장 근처 한 음악학원. 로커 강산에의 '예럴랄라'가 여성 보컬의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흘러나오고 있다. 데뷔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주부 그룹사운드 '능수누리'였다. 이들은 다음달 3일 대표적인 지역 축제 '흥타령축제'에 초청받아 처음으로 무대에 선다.

이영미(41.드럼).전숙자(41.키보드).유미숙(37.베이스기타).채윤숙(31.보컬 겸 리드기타)씨 등 능수누리의 멤버 4명 중 택시회사 호출 무선중계원으로 일을 하는 전씨를 빼곤 모두 전업주부. 이들은 지난해 가을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학원에 통기타를 배우러 갔다 서로의 '끼'를 알아봤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노래방에 갔을 때 주눅들지 않을 만큼 노래를 좀 할뿐 특별한 음악적 재능은 없었지만 용기를 냈다. 밴드를 결성한 것은 지난 4월. 팀 이름은 천안을 상징하는 능수버들의 '능수'와 세상을 뜻하는 '누리'를 합쳐 만들었다.

그룹사운드 활동 경험이 있는 학원장 김해선(44)씨가 이들을 적극 도왔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르는 멤버들을 한명씩 붙잡고 앉아 직접 가르쳤다. 하루 네시간씩 계속되는 강행군에도 능수누리 멤버들은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달 이들은 가족.친지를 모아놓고 약식 발표회를 열어 "들어줄 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룹의 리더인 이씨는 "이젠 주부 스트레스란 말은 모르고 산다"며 "남편과 아이들 모두 나의 극성 팬"이라고 자랑을 늘어놨다. 그의 아들(16.고1)은 엄마 영향으로 최근 전자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 능수누리의 레퍼토리는 소화해 내기 쉬운 '탈춤''민들레 홀씨되어''하늘색 꿈' 등의 곡들이다. 하지만 기량이 나아지면 하드록풍의 최근 유행곡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다음달 3일 공연에선 모두 일곱곡을 부른다. 처음 서는 무대인 만큼 난생 처음 입어보는 과감한(?) 무대 의상도 준비했다.

"떨리기도 하지만 설렘과 기대가 더 커요. 주위에서 젊어지고 예뻐진다는 소리를 들을 때 힘이 솟아요. 아직 우리 악기와 엠프를 갖추지 못했어요. 빠듯한 살림에 비싼 장비를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조만간 장비를 모두 구하는 대로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음악봉사'도 할 생각입니다."

천안=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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