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태양'서 전기 뽑는 시대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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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폭탄을 개발하면서 언제나 빛나는 태양의 비밀을 밝힌 인류는 이제 그 원리를 '인공 태양' 개발 쪽으로 눈을 돌렸다. 24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인도.유럽연합(EU) 등 7개국 대표가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 를 추진하기로 하고 가서명했다. 이에 따라 국제 '인공태양' 개발 계획의 대장정의 막을 올리게 됐다. 국제핵융합실험로는 앞으로 10년간 50억 달러(약 5조 원)를 투자해 프랑스에 실증 장치를 설치하고 20년간 운전할 계획이다. 목표는 5분간 연속 가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성공하면 시험로를 건설해 성능을 검증하고, 2050년 상용 장치를 건설한다. 핵 분열을 이용해 원자폭탄을 만들었다가 그 원리를 응용해 원자력 발전 시대를 열었듯이, 이제 수소 폭탄이 핵융합 발전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핵융합 발전 왜 하려 하나=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가장 많은 원소인 수소를 이용할 수 있다. 수소는 보통 수소와 두 배 무거운 수소(중수소), 세 배 무거운 수소(삼중수소)가 있는 데 그중 핵융합 원료가 되는 중수소는 바닷물 30ℓ 속에 1g이 들어 있다. 중수소 1g은 석탄 12t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이는 즉 에너지 고갈 염려가 없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원자력 발전소에 비하면 핵폐기물을 거의 만들지 않는 청정 에너지라는 이점도 크다. 자기 집 주변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지 못하게 하려는 시위와 핵폐기물 처리로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게 된다.'꿈의 발전소' 인 셈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꿈의 기술'이 필요하다. 5조 원을 들여 겨우 5분 연속 운전을 목표로 실험로를 건설하는 데서도 그 기술적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핵융합 시키나=원소의 핵이 쪼개지거나 두 개의 핵이 합해질 때는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 핵분열을 이용한 것이 원자력 발전과 원자폭탄이고, 핵융합을 이용한 것이 수소폭탄과 핵융합실험로다. 이런 원리는 아인슈타인이 알아냈다. 핵분열은 핵융합에 비하면 중성자로 우라늄 핵을 때리면 되는, 대단히 쉬운 방법으로 구현했다. 그러나 두 개의 핵이 하나로 합해지게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수소폭탄이 1952년 미국에 의해 처음 개발되고, 85년 당시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핵융합 발전 프로젝트를 하기로 합의했음에도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 기술적 어려움 때문이다.

수소 원자는 서로 밀어내려는 성질이 아주 강하다. 원자끼리 합해지게 하려면 수억도 되는 열로 가열하면 된다. 그러면 원자들은 더위에 옷을 벗듯 핵 주변의 전자를 떨쳐버린다. 이런 상태에서는 원자의 핵과 전자가 따로 놀게 된다. 계속 온도가 올라가면 핵끼리 합해지면서 에너지를 내뿜는다. 문제는 수억도 되는 플라스마를 어떻게 가둬 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구상에 수억 도를 견딜 수 있는 금속이 없기 때문이다.

핵융합연구센터 오영국 박사는 "플라스마를 진공 용기 속에 넣어 가두고, 그 플라스마가 벽에 닿지 않게 하는 방법을 쓴다"며 "즉, 자기장을 이용해 용기 안의 공중에 띄워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몇억 도의 플라스마라 해도 용기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일반 금속이 견딜 수 있는 섭씨 1000도 내외가 된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핵융합로에 대한 원리는 밝혀졌지만 발전소를 운영할 정도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개발해야 할 기술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현재 3억~5억 도로 플라스마의 온도를 높여 지속시키는 것은 몇 초에 불과하다. 발전을 하려면 수개월 이상 수억 도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기술 수준은 마라톤의 출발선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태양을 인간이 흉내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플라스마=지구상에는 얼마전까지 고체.액체.기체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기체인데 전기를 띠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게 플라스마다. 물질의 네 번째 상태라고도 한다. 형광등과 네온사인 속의 기체, 오로라 등도 플라스마다. 인공으로 만든 플라스마는 PDP TV, 폐기물 소각, 형광등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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