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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는 아이디어, 초등생에게 물었더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7)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제법 써늘한 기운이 돈다. 좀처럼 명랑한 소식을 들을 수 없으니 마음은 더욱 움츠러든다. 이럴 때는 책도 훈훈한 것이 당긴다. 따뜻한 사람들이 엮어내는 훈훈한 이야기 말이다.

캐서린 라이언 하이디 지음. 뜨인물

캐서린 라이언 하이디 지음. 뜨인물

미국 작가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의 소설 『트레버』(공경희 옮김, 뜨인돌)는 이럴 때 맞춤 읽을거리다. 지독한 악당도 등장하지 않고, 그래서 대단한 무용담은 아니지만 따뜻한 이야기에 건강한 메시지를 담아 읽는 이들을 뭉클하게 해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실천에 옮기시오.”

이 한마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작은 마을 애타스카데로. 이곳 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루벤 선생님이 내준 특별 과제였다.

세상을 바꾸라고? 어린 내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말도 안 되는 과제다. 이야기 속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급의 39명 중 4명만이 과제를 수행했다. 그나마 ‘특별점수’를 받기 위해 상투적인 아이디어로. 거리에 재활용 쓰레기통을 설치하자거나 불량배들이 상점에 한 낙서를 지우기 위해 덧칠을 하거나 양로원을 찾아 노인들이 젊은 세대에게 주는 말을 녹취한 것이 고작이다.

이건 이상할 게 없다. 세상 물정을 알 만큼 아는, 제법 나이든 어른이라면 ‘어차피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아’ ‘나 살기도 바쁜데 귀찮아’ 등등의 생각부터 들어 포기할 테니까.

주인공 트레버는 달랐다. 어떤 아이디어를 낼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는 선행의 파급 효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란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에 옮긴다. 우선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이들 각자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이 각각 다시 다른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방식이었다. 대신 ‘나중에 (딴 사람에게) 갚으라(Pay it Forward)-이게 이 책의 원제다-는 조건만으로. 일종의 다단계 판매식 ‘선의 나누기’다.

트레버는 자기 아이디어를 비웃는 급우들에게 “점수 때문이 아니야. 정말로 세상이 변하는지 알고 싶어서야”라고 항변한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었을까. 그렇게 소소한 일로 어느 세월에 세상이 바뀌겠냐고? 선행의 선순환이 이뤄질 만큼 세상이 만만하냐고?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마음막 먹으면 엄청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트레버는 이렇게 16단계만 지나면 400만 명이 넘는 이가 선행을 하게 된다는 걸 숫자로 보여준다.

트레버는 자기 아이디어를 비웃는 급우들에게 "점수 때문이 아니야. 정말로 세상이 변하는지 알고 싶어서야"라고 항변한다. [사진 pixabay]

트레버는 자기 아이디어를 비웃는 급우들에게 "점수 때문이 아니야. 정말로 세상이 변하는지 알고 싶어서야"라고 항변한다. [사진 pixabay]

트레버의 시작은 초라하다. 먼저 거리의 부랑자 제리, 관절염에 시달리며 홀로 사는 그리버그 부인 그리고 자기 엄마 아를렌을 돕는다. 하지만 착실하게 재기하는 듯하던 제리는 유혹에 넘어가 다시 마약을 하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무료로 정원을 가꿔주던 그린버그 부인은 돌연 세상을 뜬다. 미혼모인 엄마를 베트남전의 상흔을 안고 있는 루벤 선생님과 맺어주려 하지만 “사랑은 피아노처럼 조율할 수 없는 법”이란 냉정한 ‘현실’만 깨달을 따름이다.

이를 두고 트레버의 급우는 “은혜를 보답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어. 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람들은 고마움을 잊는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트레버는 “베풀고 싶지만 그럴듯한 일을 생각하지 못해 아무것도 못 한다. 꼭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되는데…. 큰일이냐 아니냐는 누구에게 베푸느냐에 달린 것”이라 믿는다.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선행의 씨앗은 보이지 않아도 거친 세파를 이겨내고 열매를 맺는다. 제리는 교도소에서 나온 후 남모르게 트레버의 ‘계획’에 동참하고, 뜻하지 않게 그린버그 부인의 유산을 받은 매트의 정의로운 행동은 갱들의 세계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친다. 폭력배 사망률이 뚝 떨어질 정도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트레버의 딱한 가정환경이나 ‘웃픈’ 결말은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그러나 트레버 이야기를 취재한 기자의 취재 수첩을 섞고, 트레버 엄마와 선생님의 로맨스를 녹여내는 등 읽는 재미도 가득함은 꼭 이야기해 두고 싶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라 할 게 아니다.

“변하지 않으려면 변하지 않는다. 늘 그렇게 행동하면 똑같은 꼴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 ‘착한’ 소설의 단단한 메시지를 곰곰 새겨 지금, 여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꿈 꿔보면 어떨까. 절로 마음이 착해지는 것은 덤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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