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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간 옹주마마가 왜 깍두기를 만들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5)

추석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는 풍요와 수확의 시간이다. 이때 주의할 것이 있다. 가족,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이나 취업 여부를 묻는 것은 결례다. ‘3포세대’를 넘어 ‘5포 세대’란 말이 나오는 형편에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정치나 종교를 화제로 삼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요즘은 젊은이들과 부모 세대가 가치관이 다르기 일쑤여서 분란만 일으키기 딱 좋기 때문이다.

음식상에 둘러앉아서는 음식 화제가 가장 무난하다. 그렇다고 커피나 와인에 관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은 속물스럽다. (일종의 허영이라고 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생각이다) 음식 문화사나 맛집 이야기도 혹은 음식에 얽힌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가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로 맞춤이다.

동서양 70여종의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모은 책 「음식잡학사전」윤덕노 지음, 북로드

동서양 70여종의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모은 책 「음식잡학사전」윤덕노 지음, 북로드

이럴 때를 위해 뒤적거릴 만한 책으론 『음식잡학사전』(윤덕노 지음, 북로드)만한 게 없다고 감히 주장한다. 20여년간 기자생활을 한 지은이가 동서양 70여 종의 음식 뒷이야기를 모았는데 학문적 깊이나 체계는 없지만 ‘어쩌면 이런 자료를 찾았을까’ 싶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풍성하고 맛깔스럽다.

김치와 더불어 사랑받는 깍두기는 비교적 최근인 조선조 22대 임금 정조의 둘째 딸 숙선옹주가 개발했단다. 옹주는 병조참판까지 지낸 가문으로 시집갔는데 무를 썰어 깍두기를 담가 아버지인 정조에게 올리자 정조가 크게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1940년 발간된 홍선표의 『조선요리학』에 나온단다. 이때의 깍두기는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온 뒤 만들어졌기에 요즘의 깍두기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란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깍두기는 조선조 22대 임금 정조의 둘째 딸 숙선옹주가 개발했다. 시집 간 옹주가 무를 썰어 깍두기를 담가 아버지 정조에게 올리자 정조가 크게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홍선표의 『조선요리학』에 나온다. [중앙포토]

깍두기는 조선조 22대 임금 정조의 둘째 딸 숙선옹주가 개발했다. 시집 간 옹주가 무를 썰어 깍두기를 담가 아버지 정조에게 올리자 정조가 크게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홍선표의 『조선요리학』에 나온다. [중앙포토]

햄버거와 더불어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였던 핫도그에 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17세기 독일의 정육업자 요한 게오르그헤너가 빵에 소시지를 끼운 음식을 개발했을 때는 도시 이름을 따 ‘프랑크푸트터’ 또는 ‘프랭크’로 불렸다고 한다.

그것이 미국에 들여오고 나서 1830년대 길 잃은 개를 잡아다 소시지를 만든다는 소문과 얽히면서 1890년대 핫도그(hotdog)란 명칭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나. 그런가 하면 1890년대 미국 대도시와 대학 캠퍼스를 누비며 뜨거운 소시지를 파는 ‘이동 포장마차’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를 ‘개가 끄는 마차(dog wagon)’라 부른 데서 핫도그란 이름이 비롯됐다는 또 다른 설도 들려준다.

핫도그는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처음엔 도시 이름을 따 '프랑크푸트터' 또는 '프랭크'로 불렸다. 이 소시지 빵은 미국에서 뜨거운 소시지 이동 포장마차가 인기를 끌면서 '핫도그'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중앙포토]

핫도그는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처음엔 도시 이름을 따 '프랑크푸트터' 또는 '프랭크'로 불렸다. 이 소시지 빵은 미국에서 뜨거운 소시지 이동 포장마차가 인기를 끌면서 '핫도그'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중앙포토]

이제는 피자의 인기에 밀린 햄버거가 실은 중앙아시아 초원을 호령하던 몽골인들이 장거리 여행 때 이용했던 간편식에서 나왔다든가, 30종이 넘는 재료를 소흥주에 넣어 끓이는 고급 중국요리 ‘불도장(佛跳牆)’의 원래 이름은 ‘복수전(福壽全)’이었는데 19세기 중반 그 향기에 취한 한 선비가 “스님도 냄새를 맡고 참선을 포기하고 담을 뛰어넘었다네”란 시를 읊은 뒤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일본어로 사시미(刺し身)라 하는 생선회에 얽힌 이야기가 풍미를 돋운다. 생선을 먹기 좋게 잘라 놨으니 ‘자르다(切)’라 해야 마땅한데 14세기 무로마치 막부 때부터 생선회를 ‘찌르다(刺)’란 뜻을 담은 사시미라 한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단다.

생선회는 일본에서 '사시미'라고 불리는데, 사시미라는 단어는 찌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원래는 '자르다'라는 의미가 마땅한데 일본에서는 자르다란 말이 배신을 의미하는 '우라가루'라는 말을 연상시켜 '사시미'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중앙포토]

생선회는 일본에서 '사시미'라고 불리는데, 사시미라는 단어는 찌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원래는 '자르다'라는 의미가 마땅한데 일본에서는 자르다란 말이 배신을 의미하는 '우라가루'라는 말을 연상시켜 '사시미'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중앙포토]

당시 일본 사무라이들 사이에선 ‘자르다’란 말이 ‘등에 칼을 꽂다, 배신하다’란 뜻의 ‘우라기루(裏切る)’란 말을 연상시키는 바람에 ‘자르다’ 대신 ‘찌르다, 꽂다’란 사시미란 표현을 쓰게 되었다는 설명이 그 하나.

다른 하나는 역시 무로마치 막부 시절 오사카 성의 한 요리사가 잔치에 생선회를 내놓으면서 주군인 장군이 생선 종류를 손님에게 쉽게 알려줄 수 있도록, 식탁 위의 생선 지느러미나 아가미에 생선 이름이 적힌 작은 깃발을 ‘꽂아’ 놓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청보리)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청보리) 등 비슷한 책을 냈다. 역시 음식은 입, 코, 눈만이 아니라 머리와 귀까지 즐거워야 제맛이 난다 할까. 한데 얼마 전 지인 덕에 그야말로 우연히 맛본 어느 호텔 일식당의 22만 원짜리 가이세키 요리는 불편했다. 그저 이를 계기로 사치와 허영을 다룬 책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뿐, 맛을 도통 느낄 수 없었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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