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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어·송로버섯, 돈 신경 안쓰고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6)

가격이 3만 원이 넘는 음식을 먹으면 불편하다.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고, 그 규제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건만 그렇다. 물론 이건 나만의 개인적 기준이다. 사람마다 형편이 천차만별이고, 생각은 당연히 다르니 ‘고급 음식’의 기준이 제각각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22만 원짜리 저녁 식사 때도 그랬다. 초대해준 지인도 미처 몰랐는지 메뉴판을 들고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 식당엔 달리 만만한 음식이 없어 뜻하지 않은 호사를 누린 셈이 됐다. (이건 나중에 인터넷에서 그 식당을 검색해보고 안 사실이다.)

어쨌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싼 음식을 먹은 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거다. 분위기는 좋았고, 서비스는 나무랄 데 없었으며, 맛도 훌륭했지만 말이다. 내가 좀팽이여서 그랬을까. 우리는 종종 억만장자라 해서 하루 백 끼를 먹는 것도 아니라며 돈이 곧 행복이 아니라 이야기한다.

세계 4대 진미 중 하나인 캐비어.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요리다. 김현동 기자

세계 4대 진미 중 하나인 캐비어.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요리다. 김현동 기자

그런데 세계 4대 진미라는 송로버섯, 캐비어, 푸아그라, 샥스핀을 삼시 세끼 먹으면, 아니 먹고 싶을 때 값에 신경 쓰지 않고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가진 것과 행복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귀한 말씀’은 덜 가진 이들의 자기 위안 아닐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답은 아쉬운 대로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로버트 스키델스키 외 지음, 부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워릭 대학교 정치경제학 석좌교수이자 케인즈 연구 전문가인 아버지와 엑스터대학교 철학 강사인 그의 아들이 함께 쓴 이 책은 끝 간 데 모르는 우리의 욕망을 어떻게 다스릴지, 그리하여 어떻게 ‘좋은 삶’을 살지 모색한 경제철학 책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부가 주는 진정한 편익, 즉 이제 충분하다는 만족감을 앗아가 버렸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이 없던 욕구도 만들어내 새 시장을 창출하도록 몰아붙이는 자본주의 경쟁논리 덕분이다. 교육도 좋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인적 자원’으로 파악하는 식으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화폐화’해 욕망의 대상을 확대하고 불을 지핀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가졌기 때문에 나도 갖고 싶어지는 ‘밴드왜건 재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갖고 싶어지는 ‘속물성 재화’, 비싸고 또는 비싸다고 알려져 있기에 욕망의 대상이 되는 ‘베블런 재화’도 경쟁의 산물이다.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지은이들은 “음식을 더 먹고 싶은 욕망이 적절한지에 대해, 그리고 더 고급 자동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 변덕인지 따위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경제학계에서는) 순식간에 훈련받지 못한 사람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 버린다”는 갤브레이스의 비판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만약 행복이 잘 사는 것과 내적인 연관이 전혀 없는 그저 사적인 기분에 불과하다면, 소마나 두뇌 자극술이 가장 값싸고 효과적으로 행복을 달성해 줄 수단임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왜 우리의 삶이 좋은 삶에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행복은 스스로를 돌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지은이들은 동서양의 사례를 들어 제대로 된 삶, 즉 좋은 삶(good life)의 요소를 모색한다. 들이 ‘기본재’라 일컫는, 좋은 삶의 구성요소들은 7가지다.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가 그것이다. 이 ‘기본재’들이 본질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에 주목하면서 “부는 우리가 추구하는 선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부는 유용하기 때문에, 뭔가 다른 것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다.

기본재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은이들은 일하라는 압력 줄이기(주당 노동시간의 제한과 법정 휴일의 확대, 일자리 나누기),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 등을 제안한다.

우리가 잊고 있던, 그러나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값지다. 한데 오래전 일이지만 어느 ‘사장님’은 비서를 시켜 용산의 미8군 기지에 가서 햄버거를 사 오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행복’을 누렸던 것이 아닐까 싶긴 하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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