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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민·승우 오빠부대 떴다, 아이돌 콘서트장 같은 축구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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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호 12면

축구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소녀팬들. 이들은 손흥민·이승우 등 대표팀 세대교체 기수들에 대해 아이돌 K팝 그룹 못지 않은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인 성원을 보낸다. [중앙포토]

축구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소녀팬들. 이들은 손흥민·이승우 등 대표팀 세대교체 기수들에 대해 아이돌 K팝 그룹 못지 않은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인 성원을 보낸다. [중앙포토]

12일 한국 축구대표팀과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가 맞붙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거대한 아이돌 콘서트장 같았다. 에이스 손흥민(26·토트넘)을 비롯해 우리 선수들이 준수한 플레이를 선보일 때마다 비명에 가까운 팬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한국 축구 봄날 #월드컵서 독일 꺾고 아시안게임 금 # A매치 티켓 4경기 연속 매진 행진 #소녀팬 대거 유입 #‘손흥민의 날’‘의조가 차면 골의조’… #선수들 응원하며 기쁨·슬픔 공유 #열기 지속하려면 #‘축구장은 즐거운 곳’ 이미지 심어 #‘스타 팬’을 ‘축구 팬’으로 만들어야

관중석 이곳저곳은 팬들이 만든 플래카드로 채워졌다. ‘손흥민의 날 SONday ’,

‘(황)의조가 차면 골의조’, ‘세계 1위 독일 이긴 너희들’ 등 기발하고 재치있는 응원 문구들이 가득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재일동포 축구 칼럼니스트 신무광씨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기간 중 한국 팀이 경기할 때 썰렁했던 경기장 분위기를 떠올리면 확 달라진 A매치 풍경이 놀랍고 낯설다”면서 “한국 축구가 경기력과 흥행 모두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낸 것 같다”고 말했다.

뜨거운 관중석 분위기는 우리 대표팀의 승리와 함께 절정으로 치달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 우루과이를 상대로 우리 선수들은 사력을 다했다. 후반 들어 황의조(26·감바 오사카)와 정우영(29·알 사드)이 연속골을 터뜨려 2-1로 이겼다. 앞서 우루과이와 일곱 차례 맞붙어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한을 풀며 칠전팔기를 이뤄냈다.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은 취임 이후 세 경기 연속 무패 행진(2승1무)을 이어갔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6만4170명의 축구팬들은 붉은악마가 준비한 카드 섹션에 동참하며 우리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꿈★은 이어진다’는 글귀와 태극기, K리그 엠블럼을 함께 만들어 보이며 축구 열기의 확산을 염원했다.

스타 플레이어들 아이돌급 인기

축구대표팀의 인기가 치솟은 건 러시아 월드컵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다.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당시 FIFA랭킹 1위 독일을 2-0으로 꺾으며 불이 붙기 시작한 축구 열기는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함께 ‘신드롬’ 수준으로 증폭됐다. 팬들 사이에서 ‘축구대표팀 인기 삼대장’이라 불리는 손흥민·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조현우(27·대구)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모두 참가한 선수들이다.

지난 5월 오픈 트레이닝 행사에 참석해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승우. [뉴스1]

지난 5월 오픈 트레이닝 행사에 참석해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승우. [뉴스1]

인기 폭발의 키워드는 ‘여심(女心)’이다. 이정섭 대한축구협회 마케팅팀장은 “지난 달과 이번 달 A매치 티켓 구매자들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령에서는 ‘10대’, 성별에서는 ‘여성’이 가장 의미있는 단어로 추출됐다”면서 “여중·고생 팬들이 A매치 경기장에 대거 유입된 게 축구대표팀의 주목도가 대폭 높아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아이돌 K팝 그룹의 핵심 지지층과 일치한다. 이들은 좋아하는 ‘오빠’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온라인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광클(빛의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한다는 뜻)’하고, ‘굿즈(goods)’라 부르는 아이돌 그룹 관련 상품을 종류별로 사 모은다. 콘서트에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하루 이틀 전부터 노숙을 하며 줄을 선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며 자신이 지지하는 스타를 홍보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같은 현상이 축구대표팀과 A매치에 나타났다. 12일 우루과이전(6만4170석)과 16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파나마전(2만5486석) 티켓은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지 3시간 만에 모두 팔렸다. 지난 달 코스타리카전(3만5922석)과 칠레전(4만760석)에 이은 4경기 연속 매진 행진이다. 조준헌 대한축구협회 홍보팀장은 “10월 A매치 티켓 발매 당일 온라인 사이트에서 대기한 인원만 6만20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매진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모든 티켓이 3시간 만에 팔려나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경기도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리는 축구대표팀 오픈 트레이닝 초대권 700장은 8분 만에 동났다. 이 팀장은 “선착순 입장으로 진행한 지난달 오픈 트레이닝 행사에는 500명만 초청할 예정이었지만, 전날 저녁부터 트레이닝센터 정문 앞에서 줄을 서며 대기한 소녀팬들이 너무 많아 1100명을 들여보냈다”면서 “안전사고를 우려해 축구협회 마케팅팀 전원이 현장으로 달려가 전날 저녁부터 행사 종료까지 팬들과 함께 했다”고 했다.

20대 선수들 SNS로 팬들과 소통

축구 선수들이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는 이유에 대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감’을 이야기했다. “청소년들이 공유하는 팬덤(fandom) 문화의 특징은 대상자에 동화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이라며 “축구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는 젊은 선수들이 시련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하고픈 마음이 뜨거운 인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이어 “손흥민·이승우 등 20대 초중반의 신세대 선수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점도 주목도를 높인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축구의 봄’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현재 상태는 거품이 상당히 끼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축구 자체에 대한 이해와 관심보다 ‘스타 플레이어’에 무게가 쏠린 분위기는 언제든 가라앉을 수 있다는 뜻이다. 2002 한·일월드컵 4강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 이후 치솟은 축구대표팀과 K리그의 인기가 오래 가지 못하고 사그라진 게 좋은 예다.

관건은 축구대표팀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식기 전에 ‘선수 팬’들을 ‘축구 팬’으로 돌려놓을 수 있느냐다. 스포츠마케팅 전문가 김도균 경희대 교수는 “즉흥적이고 변화무쌍한 10~20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핵심”이라면서 “강팀과의 지속적인 평가전을 통해 ‘A매치’ 이벤트 자체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가져가고, ‘축구장은 놀 것 많고 즐거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과 어린이를 파고드는 공격적 마케팅으로 흥행에 성공한 프로야구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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