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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파일] 자신을 제물로 바치듯 … 호프만의 명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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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가끔은 "그저 연기를 즐겨라"는 말만으로 충분한 영화가 있다. '카포티 '(감독 베넷 밀러.25일 개봉)가 그렇다. 1950~60년대 미국 문단을 풍미한 스타 작가 트루먼 카포티(1924~84)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그간 개성파 조역 정도로 치부돼 왔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을 재발견하는 쾌감을 안겨준다.

희대의 살인극을 소재로 시종 냉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영화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솟구치는 것은 호프만의 탁월한 연기 덕분이다. 그는 카포티의 트레이드 마크로 알려진 맹맹거리는 소년 같은 말투 등을 빼다박듯 연기했다. 카포티의 전기작가 제럴드 클라크를 수차례 만났고, 메릴린 먼로와의 생전 인터뷰 녹음 테이프를 반복 청취한 덕분이다. 그 결과 실제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카포티를, 영화 속 인물과 똑같았을 거라고 단정짓게 한다. 스스로를 작가적 야심의 제물로 바치고 마는 카포티와 온전히 결합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뉴욕타임스가 '2005년을 빛낸 최고의 배우'로 꼽은 호프만은 그간 '리플리''매그놀리아''부기나이트'등에서 강한 개성을 드러낸 연기파다. 카포티는 그의 첫 단독 주연작으로 올해 아카데미는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5개의 연기상을 그의 품에 안겼다.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이자, 게이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소재로 한 소설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특히 취재에 기반한 '논픽션 소설'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유명한데, 영화 카포티는 그의 첫 논픽션 소설인 '인 콜드 블러드(냉혈한)'의 탄생과정을 담은 것이다.

59년 미국 캔자스주의 호젓한 농가에서 일가족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취재에 나선 카포티는 범인 중 감수성이 예민한 페리(클리프톤 콜린스 주니어)에게 끌린다. 카포티는 페리를 주인공으로 실화소설을 쓰기로 하고 일류 변호사를 붙혀 구명에 나선다. 감옥에 같이 살다시피 하며 페리를 심층취재하는 카포티. 그러나 페리는 사건 당일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문다. 시간은 흐르고 페리는 필사적으로 카포티에게 매달린다. 카포티는 페리를 이용한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영화는 끔찍한 살인극의 실체를 파헤치기보다 페리와 카포티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둘 사이의 연민과 애증, 페리를 이용하려다 역으로 덫에 걸린 카포티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면밀하게 추적하는 데 주력한다.

인 콜드 블러드는 미국 출판가에 논픽션 붐을 일으키며 빅히트했다. 카포티는 리처드 브룩스 감독과 함께 책을 영화화(67년)했고 이 역시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카포티는 이 책 이후 다시는 책을 쓰지 못했다. 그의 말년은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비참한 것이었다고 영화는 전한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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