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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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중남미의 어느 공화국 시민인 그는
동란과 쿠데타를 딛고선 아시아의 작은
공화 정부의 취업비자를 받아
뜨끈뜨끈한 잠실야구장 타석에 섰다
(왜 중남미 선수들은 교범에도 없는 말타기 자세를 하는지 몰라)

메시아가 어디 사는 지도 모르면서
검게 붉게 얽은 얼굴을 하고 그는 처음에
야구공과 방망이를 손난로처럼 품고
한겨울 국제공항 청사를 두리번거리며 어슬렁거리며 나왔을 것이다
(머리통이 얼마나 작으면 헬멧 속에 모자를 또 썼을까)

그는 당당하게 2루타를 쳤다
베이스를 밟고 선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수천 개 눈동자가 일순간 그의 몸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파도처럼 술렁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거대한 솥단지가 되어 펄펄 끓다가
더 작은 체구의 다음 타자가 안타를 칠 수 있을지 의심한다
(관중석에 앉으면 왜 선수들은 모두 야구공처럼 보일까)

비쩍 마른 붉은 눈의 게바라를 읽고 싶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공화국의 깃발을 보고 싶었지만
그는 너무 작았고 액정 화면에 잡힌 그의 헬멧에는
국적 불명의 독수리 이니셜만 코를 벌름거리며 박혀 있었다

멕시코와 푸에르토리코와 쿠바 출신의 운수 좋은 메이저리거들도
타석에 서면 구부정하게 허리 굽히고
꼭 말 타는 자세로 방망이를 든다

*메히아 - 국내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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