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인신매매 결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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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신매매단이 나타나면 즉각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의 인신매매조직에 대한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 직업소개소를 통하지 않은 종업원은 채용하지 않는다』
어제 성남 유흥업소 주인 49명이 모여 결의한 「반 인신매매」결의내용이다. 60여 성남 유흥업소중 대부분의 업주들이 모여 결의한 이 반 인신매매·인신매매추방 운동은 「여자를 장사밑천」으로 삼고 있는 인신매매의 수요자격인 유흥업소 업주들의 자성적 목소리에 더욱 현실성을 지니게 된다.
도심 한복판, 가정주부로 보이는 젊은 자가운전자의 차를 뒤에서 슬쩍 들이받는다. 앞차와 뒤차의 운전자가 함께 차에서 내려 충돌 부위를 살펴본다. 파손된 부분은 공장에서 고쳐 드리겠다, 뒤차로 댁까지 모셔 드리겠다는 정중한 사과에 젊은 가정주부는 뒤차로 옮겨탄다.
그로부터 6개월, 이 주부는 유흥업소와 사창가를 전전하며 만신창이로 몸과 마음이 걸레조각처럼 된 채 돌아갈 집, 보고 싶은 아들딸과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연말 한 방송국기자의 마이크 앞에서 이 여인은 오열하며 자신의 지난 6개월을 이렇게 털어놓았었다. 그 여인의 한맺힌 절규를 들은 사람이면 알 것이다.
한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짓밟으며 단란한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병들게하는 이 도심의 인간사냥꾼들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단속과 수사에만 의존할 수 없다. 이들 인간사냥꾼들이 극성을 부리는데는 메마른 산업화시대 속에서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여기는 인간경시 풍조와 자신의 쾌락, 향락에 탐닉하는 부도덕한 향락풍조가 도사리고 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게 마련이다. 새모습, 새얼굴의 여인을 요구하는 수요자가 있기 때문에 그 수요에 잘 따르는 유흥업소가 밤마다 흥청거리며 돈을 벌게 되는 법이다.
60여 성남 유흥업소 업주들이 반 인신매매의 자성적 결의를 한 것은 이들 업소 대부분이 지금껏 인신매매단을 통해 「장사 밑천」을 공급받아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성남 한도시가 이럴진대 다른 도시라고 해서 예외가 될수 없다.
이러한 인간경시와 향락풍조의 사회적 메커니즘 속에서 『인신매매문제는 업주들이 상당 부분 책임을 져야한다』는 자성적 논의와 함께 『철저한 개인면담을 통해 본인이 원하면 모든 종업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성남시요식업조합 중동 제1지역회의결의는 온정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회복의 선언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비록 그 결의가 경찰의 단속에 밀린 자구책의, 하나였든 또는 몇몇 개인의 설득에 의한 것이었든 관계없이 사회악의 제거, 박멸을 위해 지역국회의원·시장. 경찰서장·지역회가 같은 뜻을 모아 결의했다는데서 더욱 값진 의미를 갖게된다. 하나의 사회문제에 대한 지역 공동체적 대처야말로 민주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본 규범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비단 인신매매에 국한되는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의·민주적 사회를 이뤄가는 방향이 바로 이 성남시의 지역회가 보여준 결의 속에 있음을 찾게된다.
성남시 유흥업소 지역회의 반 인신매매 결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시민 스스로 사회악을 추방했다는 긍지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보자. 이 운동이 다른 사회악에 대해서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시금 올림픽을 치러낸 성숙한 시민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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